30년 넘게 한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다 3년 전 퇴직한 김모(62)씨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평생 바쁘게 일을 하며 생활한 탓에 퇴직 후에는 여가생활을 즐기며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자식들 도움을 받지 않고 생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에 할 일은 없어져 무기력해진 데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데 아무 계획도 짤 수 없어 고민만 깊어졌다. 같은 고민을 나눌 친구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김씨처럼 은퇴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우울증을 앓는 중년이 늘면서 이들을 위한 전용 커뮤니티가 생겼다. 노년을 위해 의료, 문화, 여행 등 여러 서비스를 한데 묶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50+세대’ 전용 멤버십 서비스는 무료 회원 가입만으로도 이들을 위한 특강, 의료 예약 서비스, 문화생활 팁 등을 제공하며 50+세대 전용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퇴직 후 맞춤 서비스 제공하는 멤버십
지난해 6월 ‘50세부터가 진짜 전성기’라는 문구를 내세우며 론칭한 라이프케어 멤버십 브랜드 ‘전성기(www.junsungki.com)’는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이들의 문의가 늘면서 가입자 34만명을 돌파했다고 20일 밝혔다. 전성기는 회원 가입을 하면 제휴된 병·의원을 이용할 때 우대 서비스를 제공하고 50+세대를 위한 CGV 영화 할인권, 유한킴벌리 노년 전용 제품 샘플 등을 제공한다. 이밖에도 멤버십 전용 소규모 맞춤 여행, 은퇴 이후 생활강좌 등도 제공한다.
50세 이상 회원이 멤버십 서비스에 가입하면 코레일에서 발행하는 ‘레일플러스 카드’(전국 호환 교통카드) 기능이 탑재된 멤버십 카드도 발급된다. 지하철이나 기차, 버스 등에서 사용 가능하다. 또한 50세 이상을 위한 라이프케어 매거진 ‘헤이데이’를 4개월간 무료로 제공한다.
최근에는 은퇴를 미리 준비하는 40대들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A씨는 “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데 은퇴 이후 삶에 대해 미리 관심을 갖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아서 멤버십 서비스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회원 3500만명 美 은퇴자협회 ‘AARP’
국내 전성기 멤버십 서비스는 미국 은퇴자협회(AARP·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를 벤치마킹 했다. AARP는 1947년 은퇴 교사들의 소모임으로 출발해 지금은 미국 최대 비영리 민간단체로 자리 잡았다. 회원 수만 3500만명이 넘을 정도로 강력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1년 예산이 6억 달러(6700억원)로 우리나라 복지예산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AARP의 캐치프레이즈는 ‘도움은 받기보다 줘라’이다. 연회비는 12달러지만 멤버십 프로그램으로 이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노년층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단체를 표방하고 있다. 노년들의 자원봉사활동도 지원한다.
실생활에 필요한 강좌들도 진행한다. ‘55세 생존 신중 운전법’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AARP에서는 강의를 원하는 회원에게 8달러를 받고 이틀 동안 하루 4시간씩 안전 운전법을 가르친다. 나이가 들면서 둔감해진 반사신경 등을 보완해 안전 운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보험회사에서는 이 과정을 이수하면 보험료 할인 혜택을 줄 정도다.
AARP는 입법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1965년 65세 이상에게 무료 의료 혜택을 주는 ‘메디케어’를 법제화했고 1970년대 말에는 기업 정년제를 폐지하기도 했다. AARP 존 로더 정책전략국장은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늘어나는 만큼 미국을 비롯한 국가에서 은퇴 이후의 일자리 창출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노인들을 재교육시키고 쉽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AARP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강의에 엔딩노트 작성까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는 중장년층은 많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마땅히 배울 곳이 없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영상 메시지 전송 사용법을 몰라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성기가 지난 1월 27일 50세 이상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스마트폰 완전정복’ 강연에는 70명이 넘는 회원이 참석해 스마트폰 활용법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강연에 참석한 이들 중 95%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SNS를 활용하는 경우는 20%에 머물렀고 모바일 메신저로 사진 전송을 할 줄 아는 이들도 절반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연에서는 휴대전화를 분실하더라도 주소록을 복구할 수 있는 주소록 애플리케이션 활용법과 퇴직 후 사라진 명함을 대체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관심 있는 사진들을 모아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등을 소개하고 활용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밖에도 은퇴수업 강좌에서는 ‘우울한 중년을 위한 힐링캠프’ ‘중국 역사와 문화 이야기’ 등의 강연이 열렸고 ‘산악인 엄홍길과 함께하는 가을산행’ 등 50대 이상을 위한 멤버십 전용 여행 서비스도 제공된다.
일본 시니어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엔딩노트’의 한국 버전인 일종의 유언집 ‘인생노트’(사진)도 인기를 끌고 있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노트에 매년 상속과 유언 등의 내용을 남긴 뒤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책을 써 나가는 방식이다. 태몽과 출신학교 등 기억에 남는 과거를 기록하고 동시에 현재 상황에 대한 기록인 건강, 보험가입 현황 등을 적어 미래에 필요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하는 것들’인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도록 했고 유언 작성법과 사전의료의향서 등을 작성하는 별도의 페이지도 담겨 있다. 비닐커버를 씌워 노트를 보관할 수 있다. 전성기 관계자는 “매년 쌓이는 노트에 인생 전반이 기록돼 자녀에게 물려줬을 때 그 의미가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인생 2모작 ‘50+세대’] 은퇴 후 절벽?… ‘구명밧줄’ 있습니다
입력 2015-03-21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