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기획-전세대란이 빚은 풍경] 영등포 모텔에 트윈 베드가 늘어났다, 왜?

입력 2015-03-20 02:33

서울 여의도의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모(41) 과장과 허모(34) 차모(35) 대리는 공통점이 있다. 각각 동대문·마포·서초구에서 살다가 2011∼2012년 결혼했는데 김 과장은 인천, 허 대리는 의정부, 차 대리는 수원으로 이사했다.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외곽으로 옮긴 것이다.

세 사람은 회사 회식이 끝나면 영등포의 한 모텔에 모인다. 어색한 ‘동침’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심야에 택시 타고 집에 가면 할증료까지 붙어 택시비가 3만∼4만원씩 나오다 보니 모텔에서 함께 자고 바로 출근하자고 뜻을 모았다. 영등포 모텔의 숙박요금은 통상 4만∼5만원이다. 셋이 나눠 내면 이튿날 해장국 값을 감안해도 택시비보다 훨씬 적게 든다. 회사 근처여서 좀 더 잘 수도 있다. 김 과장은 19일 “신용카드 명세표를 보고 유흥업소에 간줄 알고 기겁했던 아내도 이제 회식 날이면 당연히 모텔에서 자는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등포 모텔촌에 이런 ‘직장인 동침족’이 늘고 있다. 시간과 돈을 절약하려는 동침족은 대부분 서울에서 경기도로 집을 옮긴 ‘전세 난민’이다. 여의도는 물론 강남 마포 등 직장 밀집지역과 가까운 데다 인천 수원 등 서울 외곽으로 가는 교통편이 많다는 지리적 이점에 이곳에 자연스럽게 ‘베드타운’이 형성됐다.

지난 17일 자정에도 영등포역 인근 A모텔로 직장인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정모(32)씨는 동료 2명과 함께 회식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그는 “집이 경기도 안양인데 이 시간대에 집에 가면 택시비만 2만5000원이 나온다. 모텔을 이용하면 세 명이 나눠내니까 1만원 남짓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야근이나 회식이 있는 날은 종종 동료와 함께 모텔에 온다”고 했다.

이 모텔이 하루 종일 받는 손님의 절반은 정씨 같은 직장인이다. 주말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방 10개 정도가 직장인에게 나간다. A모텔 관계자는 “(직장인들) 대부분은 자정 넘어 들어와 아침 일찍 나간다”며 “밤늦게 집에 갔다가 아침 일찍 나오는 게 귀찮아 아예 귀가가 늦는 날은 모텔에서 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B모텔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방 60개 중 15개는 매일 직장인으로 채워진다. 아예 직장인을 겨냥한 조식 서비스까지 내놓았다. C모텔은 현재 5개인 ‘트윈 베드룸’을 상반기 중 15개로 늘릴 계획이다. D모텔도 20개 정도였던 트윈 베드룸을 최근 35개로 늘렸다. C모텔 관계자는 “삼삼오오 찾는 직장인이 많아 여러 명이 불편 없이 잘 수 있는 트윈 베드룸을 늘리는 것”이라며 “하루에 찾는 손님을 비율로 따지면 중국인 관광객 다음으로 많은 게 직장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거나하게 취한 직장인들이 서로 싸우는 등 부작용도 생긴다. E모텔은 최근 ‘2인 이상 남성은 받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 술에 취해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일이 더러 생겨서다. E모텔 업주는 “직장인 손님이 많아지면서 주변에서 ‘시끄럽다’는 민원도 적잖게 들어온다. 응대하기도 힘들어 그냥 직장인 손님은 안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