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은 이 병의 원인균인 나균을 의학적으로 규명한 학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병명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 이름을 병명으로 붙이는 것은 구시대적 방식이며 지금은 병명에 사람 이름을 붙이지 않는 편이다. 한센병은 영어로 Leprosy이며, 병명에 사람 이름이 없다. 나균의 학명 Leprae와 흡사하다. 그렇게 맞추자면 우리도 나균에 상응하는 나병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한센병이라는 용어를 우리나라에서 새로 채택한 이유는 바로 병 자체에 대한 심히 부정적인 선입견 때문이다. 병명이라도 바꾸어서 심하게 왜곡된 견해를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함이다. 정신질환의 경우도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너무 심해 조현병이라는 새로운 병명을 채택하고 있다.
이렇듯 이름만으로도 소외의 대상이 되는 병이었는데 그 이유는 끔찍하게 느껴지는 신체의 변형 때문이기도 하고 전염될 수 있기도 하여서다. 레위기에 의하면 한센병으로 판정될 경우 스스로 부정하다고 외치며 진영 밖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레 13:45∼46). 이제는 균이 규명되고 치료제도 개발되었으니 적극적인 치료로 전염을 막고 신체 변형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예전엔 저주받은 병이라는 인식에서 못 벗어난 채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타인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고 자신은 그 병으로 희생이 되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다소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성서는 하나님이 작성하신 것이니까 시대를 초월한다고 생각한다. 의미로는 맞지만 실제 글 자체로는 아니다. 성서는 작성 당시의 상식 수준에서 기록되어 있지 시대를 초월하여 그 시대에서 터득하지 못한 과학적 지식이 담겨 있지는 않다. 지구 생성, 지동설, 여러 질환의 이해 등등이 그러한 예다. 한센병에 대한 접근을 레위기 수준에 머물러서는 당연히 안 되며 과학과 의학의 발달에 의한 새로운 지식에 맞추어 적절한 의료 접근이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을 포함한 다른 모든 질환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서적 접근이라면서 정신질환을 영적으로만 해석하고 접근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런데 한센병의 병적 특성을 알아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다. 한센병이 오명을 가진 것은 신체의 변형이 주요한 이유인데 사실 한센병은 암처럼 스스로 피부, 근육 혹은 뼈를 파괴시키는 병이 아니다. 한센병은 인간의 감각세포를 파괴한다. 그래서 어디 부딪혀도 모르니까 신체가 점차 닳아 없어지는 것이다. 에이즈가 무서운 이유도 비슷한데, 에이즈균이 맹독성이 있어서 인간을 파괴하고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에이즈균이 우리의 면역기능을 마비시켜 다른 여러 감염 질환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죽게 되는 것이다.
무감각이 그렇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잠시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 감각은 예민해도 문제지만 너무 무디어도 문제다. 신체 감각과 심리 감각 둘 다 마찬가지다. 신체 감각이 무딘 하나의 예로 술이 센 사람을 들 수 있다. 술에 강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 알코올 중독 가능성이 높아진다. 적당히 취하려면 남보다 많은 양의 술을 먹어야 하니 그만큼 술에 의한 피해를 더 보는 것이다. 심리 감각이 무딘 하나의 예로 죄에 무딘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 “양심이 화인을 맞았다”(딤전 4:2)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제는 한센병이라고 해도 스스로를 격리할 필요는 없지만 술에 센 사람과 죄에 무딘 사람은 차라리 레위기 시절로 돌아가 “나 사실 이런 문제가 있소. 그러니 나를 가까이하지 마시오”라고 외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시대를 역행하는 생각을 해본다.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의원>
[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무감각의 병
입력 2015-03-21 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