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인으로는 사상 처음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할 것이 확실시된다. 외국 방문을 잘 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은 일본을 방문해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이처럼 순풍을 탄 미·일 관계와 대조적으로 한·미 간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놓고 갈등과 균열이 표면화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미국의 경각심이 높아지고 이를 간파한 일본의 ‘워싱턴 사로잡기’ 외교가 효과를 거두면서 아베 총리 취임 2년여 만에 미국 조야에서 한·일의 위상이 역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18일(현지시간) “현재 미 의회 지도부의 기류를 볼 때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아베 총리의 상·하원 합동연설을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는 것으로 안다”며 “곧 아베 총리에게 의회 연설 요청 초청장을 발송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다음달 26일부터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아베 총리는 미국 상·하원이 소집된 가운데 연설하는 사상 첫 일본 총리가 된다.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 주역인 마이크 혼다 의원과 한인 단체들은 미 의회의 ‘전제조건’ 없는 아베 연설 허용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대세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2012년 12월 아베 총리가 집권할 당시 그가 이처럼 이른 시일에 미국으로부터 ‘외교·정치적 전리품’을 챙길 것으로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아베에게 전리품을 안겨주려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아베 총리가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과 평화헌법 재해석 등을 밀어붙여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적극 호응한 데 대한 ‘인정’의 성격이 강하다. 한 워싱턴 소식통은 “1년이 멀다하고 정권이 바뀌는 정치불안에다 역대 일본 총리들의 유약한 리더십에 좌절감을 가졌던 미국에 ‘강력한 지도자’라는 아베의 긍정적인 측면만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국 대통령이 여섯 번이나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만큼 같은 핵심 동맹인 일본 총리에게도 그 기회를 줄 때가 됐다는 여론도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미 의회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 등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아베 총리에게 쉽게 의회 연설을 허용한 것은 일본 로비력의 승리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미 의회 전문위원 출신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데니스 헬핀 연구원은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일본을 방문하는 미 의원들의 규모와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을 뿐 아니라 일본 외교관들이 현직은 물론 전직 의회 보좌관들도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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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美, 아베 상하원 합동연설 허용 가닥] 中 견제 이심전심… 韓美관계와 대조
입력 2015-03-20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