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박강월] 죽으면 살리라

입력 2015-03-21 02:55
등 모양의 하얀색 꽃봉오리 속에서 마치 요술처럼 빨강색 나팔 같은 또 하나의 꽃이 터져 나오는 댄드롱이. 요즘 우리 집 실내 화초 중에서 히로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예술적 감각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다년생인 데도 우리 집에서 무려 20여년을 함께한 가족 같은 꽃이어서 특별한 애정도 있지만 그 끈질긴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20여년 전 새 아파트로 추운 겨울 이사했을 때 베란다에 방치해놓았다가 얼어 죽었던 꽃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안타까워하자 남편은 피아노 위에 화분을 올려 천장에 핀으로 죽은 가지들을 고정시켜주었다. 그대로도 멋진 조형물이었지만 싹도 꽃도 피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매일 정성껏 물을 주고, 가족들이 나가고 나면 피아노 위에 걸터앉아 죽은 가지들을 붙잡고 안수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매일 돋보기로 관찰한 결과 어느 날엔가는 기적처럼 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원, 세상에나…. 그해 봄 천장을 온통 뒤덮고 마치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핀 그 꽃들은, 너무 많아서 세어 보다 그만두었지만 아마도 수백, 아니 수천 송이는 되었던 듯하다.

그 후 댄드롱은 집안에서만 키우게 됐는데 그래선지 사철 잎만 무성하고 꽃은 피우지 못했다. 지난가을 새집으로 이사해 왔을 때 남편이 용기를 내어 가지들을 깡똥하게 다 잘라내었더니 다시 또 화려하게 꽃을 피웠고, 지금은 꽃잎이 보라색으로 변해 열매까지 맺고 초록색 이파리도 쑥쑥 잘도 뻗어나가고 있다.

아픈 친구에게 댄드롱 꽃 사진과 함께 이런 편지를 띄웠다. “우리도 십자가 생명으로 치유 받아 이처럼 활짝 꽃을 피우자!” “죽으면 살리라!” 하시던 주님의 음성이 지금은 부지런히 넝쿨을 올리고 있는 무성한 댄드롱 잎사귀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박강월(수필가, 주부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