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하철 9호선의 역명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역사성을 근거로 역명을 봉은사역으로 결정했다고 주장한 반면 기독교계와 시민들은 편의성을 내세워 ‘코엑스’ ‘삼성코엑스’ 등 중립적 이름으로 하라며 서울시의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일반 시민조차 코엑스가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회의 장소이며, 젊은층이 선호하는 문화공간이기 때문에 역명으로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이 코엑스역 원하는 이유
봉은사 역명 논란은 매우 중요한 논쟁을 야기시켰다. 그것은 과연 봉은사가 역명으로 사용될 수 있을 만큼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정통성과 역사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봉은사가 긴 역사를 지니고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제시대 봉은사 주지와 신도들이 보여준 행동은 부적절했다. 봉은사는 일제가 전시체제를 위해 만들어낸 심전개발운동(心田開發運動)의 본거지였고, 일본군 전몰장병 충령탑을 제막하고 중일전쟁 기념법회를 개최한, 조선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친일공간이었다.
오래된 것이 역사성은 아니다
주지였던 나청호 김상숙 강성인 홍태욱 승려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위해 최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성을 앞세운 서울시의 논리에는 상당한 오류가 들어 있다. 친일의 중심에 있던 사찰을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로 인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실 조선시대 불교가 처한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승려는 도성에 출입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일본 불교가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조선도 일본을 의식해 승려의 도성출입을 허용했다. 그 후 일본은 조선 침략에 불교를 활용했다. 1911년 사찰령을 만들어 전국 사찰을 총독부 산하에 두고 지원했다. 일부 승려들은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대부분은 받아들였다.
당시 일제는 기독교를 자신들의 통치에 잠재적인 위협요소로 생각했으며, 불교를 지원함으로써 기독교를 억제하려 했다. 어쨌든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일찍부터 신사참배를 수용했고,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불교문화재를 관리·보호했다.
일제 시대 기독교가 처한 상황은 불교와 전혀 다르다. 기독교는 서양에서 왔다. 따라서 조선총독부가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는, 일종의 치외 공간에 있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신민회, 3·1운동, 신간회, 그리고 일제 말 신사참배 반대 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다수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옥에 갇히고 심한 고문을 당하거나 죽었다. 성결교단은 교단 해체까지 당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친일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일제 말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와 같이 신사참배를 했고, 국방헌금을 냈으며, 황국신민선서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선총독부가 기독교를 강력한 경계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일제 말 미국유학을 다녀온 목사들은 친미세력으로 낙인찍혀 목회현장에서 쫓겨났다.
기독교인은 일제시대에 불교가 겪었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불교가 자신들은 순수한 전통종교이며, 기독교는 반민족 종교, 외래종교인 것처럼 호도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과오를 잊은 종교적 편협성에 불과하다.
불교와 기독교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을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떤 역명을 쓰는 것이 과연 서울시민과 사회통합을 위하는 것일까. 지역 주민을 포함한 다수의 시민들은 코엑스를 방문하기 위해 이곳을 오가고 있기 때문에 사찰명을 역명으로 사용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코엑스역’처럼 중립적인 역명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다종교사회에서 특정종교에 행정·재정적 편의를 제공하는 종교편향은 사회를 위태롭게 한다. 일제시대 총독부가 기독교를 억제하기 위해 불교를 지원해준 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종교편향이었다. 결과적으로 불교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서울시, 개명으로 결자해지를
불교도, 기독교도 국가권력이 아니라 종교 본연의 영성으로 일반 대중에게 뿌리내려야 한다. 1년에 수백억∼수천억씩 재정 지원을 받으며 운영되는 종교는 언젠가는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그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특별히 사회통합을 이뤄야 하는 시장, 구청장, 국회의원, 구의원, 시의원 등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특정 종교를 지원하는 행위는 다종교사회에서 절대 금기사항이다. 그래서 봉은사 미래위원장을 지내고 ‘불교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친불교 성향의 시장’으로 추앙받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은 백번 맞다. “개인적 신앙이 공적 영역에 작용하거나 종교편향성을 낳는다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모든 종교의 비극으로 이어질 것이다.”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현대기독교 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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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20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