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새내기 천연기념물, 흑돼지

입력 2015-03-20 02:11

하늘이 내린 땅, 제주에 여행가면 맛봐야 할 대표 먹거리 중 하나가 흑돼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엔 인분을 먹이로 키웠다 해서 똥돼지로 불리던 녀석이다. 현지에서 도새기, 돗, 도야지 등으로 통용되는 흑돼지는 육질이 쫄깃하고 맛이 일품이어서 가격이 여느 돼지보다 비싼데도 인기가 대단하다.

우리나라는 2000여년 전부터 돼지를 사육했다고 전해진다. 만주에서 유래된 털이 까맣고, 체구가 작은 돼지가 우리나라 풍토에 적응하면서 토종이 됐다. 토종돼지는 작은 데다 성장이 느리고, 새끼까지 적게 낳아 경제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1910년대 일제강점기 이후 버크셔종 등 외래종을 들여와 교잡을 통해 토종을 개량했다. 이후 토종돼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흑돼지는 대부분 버크셔 교잡종이다. 버크셔종도 몸이 까맣다.

천우신조랄까. 제주축산진흥원이 제주 전역과 부속 섬을 샅샅이 뒤진 끝에 1986년 우도에서 순수 토종 흑돼지 수컷 1마리와 암컷 4마리를 찾아냈다. 수컷엔 ‘김문’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줬다. 김문의 자손은 지금 260여 마리로 늘었고, 지난 17일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되는 가문의 영광까지 누리게 됐다. 가축으로는 진돗개, 연산 화악리의 오계, 제주마, 경산 삽살개, 경주개 동경이, 제주 흑우에 이어 7번째다. 가축 천연기념물 7종 가운데 제주를 원산으로 하는 가축이 3종이나 되는 걸 보면 제주가 천혜의 땅인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천연기념물 지위를 누리는 돼지는 제주축산진흥원 안에서 사육하는 김문의 자손들에 국한된다. 김문의 자손이라도 제주축산진흥원을 벗어나면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돼 일반 흑돼지처럼 다양한 요리로 식용이 가능하다. 적정 개체 수만 혈통 보존 및 개량에 활용하려는 취지에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혈통이 등재된 진짜 토종 흑돼지를 맛볼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