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수 목사의 남자 리뉴얼] 내 자녀의 독립기념일은?

입력 2015-03-21 02:03

세 자녀의 성장과정을 담은 비디오는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상자다. 좁은 욕실에서 서로 웃고 장난치며 물놀이하는 모습, 여름날 사이좋게 입안에 포도알을 넣어주며 행복해하는 모습,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성경을 읽는 시간,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부모에게 자녀는 자기 자신과 같은 존재다. 어쩌면 나 자신보다 더 아끼며 사랑했기에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일지 모른다. 얼마 전 식탁 앞에서 오순도순 간식을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함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나는 일은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자 간절히 바라는 기도제목이다. 그런데도 계속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해온 장군봉(송재호분) 할아버지는 자녀들의 결혼을 회상하며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다. “우리는 다시 부부다. 가족이었는데…”라며 말이다. 시집 장가 안 가고 평생 잘 모시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자녀들은 “자주 찾아뵙겠다”는 말과 함께 부부의 품을 떠났다. 그 후로 발걸음 소리는 뜸해졌고 부부는 마주앉아 다정스럽게 저녁을 먹는다. 그렇다. 가정은 부부로 시작해서 자녀를 낳아 가족이 되고, 자녀들이 결혼해서 부모 품을 떠나고 나면 다시 부부만 남는다. 장성한 자녀들이 캥거루족이 되어 부모 품을 떠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자녀들의 결혼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은 그동안 잘 살아온 남자들의 인생 전반을 흔드는 경우도 있다.

중년의 끝자락, 자녀의 결혼은 인생의 중간결산이다. 남자들은 자녀들의 결혼을 앞두고 막연한 불안이 시작된다고 한다. 예상을 뛰어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혼수문제나 가족문화 차이로 갈등이 빚어질 때면 무너지는 것은 부모들이다.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고 할까.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힘겹게 이끌어온 남자들에게 자녀의 결혼은 또 다른 두려움기도 하다.

남자 나이 오십 이후에는 자녀들을 떠나보내고 새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먼저 자녀들을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는 자녀들을 존중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자녀들이 알아서 내 뜻을 따르도록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는 데 익숙하다. 평생 자녀와 함께 살면서 자녀들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생각이 아니라면 자녀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도록 한걸음 물러서야 한다.

언제 보아도 불안한 자녀들의 삶에서 마음의 탯줄을 자르지 못하는 부모들이 참 많다. 결혼은 자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임에도 필요 이상으로 자녀의 배우자감에 대해서 고민한다. 우리가 신혼 때 미숙했듯이 자녀들의 신혼도 미숙할 것이다. 미숙한 사위와 며느리가 성숙해질 때까지 좋은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결혼을 앞둔 자녀들이 있는 부모는 새로운 가족이 될 며느리나 사위에게 부모로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가치를 잘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며느리나 사위에게 ‘우리집’은 낯선 나라나 다름없다. 알아서 잘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 대신 가족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이나 신혼부부에 대한 부모로서의 바람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결혼하는 아들딸에게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이 새로운 가정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계승하고 더 좋은 가족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결혼을 앞두고 부부 역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부부관계를 리모델링하는 일이다. 자녀들에게 부모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부부관계의 모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지나온 삶의 과정에서 받았을 크고 작은 상처에 미안함을 표현하고, 가족을 위한 수고에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자녀들의 결혼을 앞두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행복한 부부로 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부부 관계가 나쁜 부모들은 결혼을 준비하면서 사소한 일에도 민감해지고 지나치게 개입하게 된다. 부부가 사랑으로 회복되는 순간 부부는 영적인 친밀감을 회복할 수 있다.

믿음 안에서 함께 노후를 보내고 싶다면 먼저 사랑 안에서 치유와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 혼인예배는 결혼하는 자녀들에게는 평생 지켜야 할 사랑에 대한 언약의 시간이고, 부모에게는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를 잘 양육한 것에 대한 감사의 예배이자 축복의 시간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자녀들에게 결혼식 날은 독립기념일이라는 것을. 자녀의 결혼을 통해 부모 역시 다시 한번 신혼의 즐거움을 회복하고 신혼의 로맨스에 푹 빠져보자.

이의수 목사(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남성사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