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뉴스-손잡은 MS·노키아 한국 기업 득실] 삼성, 안도의 한숨… LG, 속타는 한숨

입력 2015-03-20 02:37

불공정 행위를 규율하는 경쟁법은 만국공통어다. 그러나 현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노키아의 기업결합을 심사한 세계 주요 경쟁 당국은 하나의 현상에 대해 제각각의 결론을 내렸다. 이제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결정만 남았다. 아직 최종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공정위의 심사 과정에서 MS, 노키아와 스마트폰 특허 문제가 얽혀 있는 삼성과 LG는 바쁘게 득실을 따지고 있다. 이미 삼성은 반사이익을 챙겼지만 상대적으로 LG는 아직 '특허괴물'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평이다.

공정위의 동의의결 개시 결정 직후 MS와 화해한 삼성

지난달 5일 공정위는 MS와 노키아의 기업결합 사건에 대해 동의의결 개시를 결정했다. 두 회사의 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는 절차에 들어간 셈이다. 5일 후인 같은 달 10일, 삼성과 MS는 반년 넘게 진행 중이던 특허 분쟁을 종료하고 손을 잡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지 않다. 삼성과 MS는 화해 이유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동의의결 개시 결정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다.

1년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MS는 2013년 9월 노키아의 휴대전화 제조 부문을 인수했다. 그 전까지 스마트폰 운영체제(OS)에 대한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MS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로부터 특허료를 받아왔다.

노키아의 휴대폰 제조업을 인수하기 전까지 MS는 이처럼 스마트폰 제조사에 특허를 빌려주는 조력자 역할에 한정됐다. 그러나 MS는 노키아 인수로 휴대폰 생산까지 할 수 있게 되면서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삼성과 LG의 잠재적 경쟁자로 돌변했다. 이들 경쟁회사를 상대로 특허료를 인상하거나 차별해 경쟁을 왜곡할 우려가 발생한 셈이다.

실제 두 회사의 특허 소송 분쟁은 MS의 노키아 인수가 발단이 됐다. MS는 지난해 8월 미국 법원에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OS 특허료를 지연 지급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과 MS는 노키아 인수 전까지 삼성이 MS에 일방적으로 특허료를 주는 관계였다. 그러나 MS가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변모하면서 MS 역시 삼성이 보유한 특허를 이용해야만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됐다. 삼성은 이를 감안해 MS와 맺었던 기존 특허 계약을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했고, MS는 이를 거부하면서 소송으로 비화됐다.

반전은 올해 초 공정위의 MS-노키아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일어났다. 공정위는 MS의 동의의결 신청 심사 과정에서 기존의 MS와 삼성 간 특허 계약에 담합 소지가 있다고 판단, 계약 변경을 요구했다.

결국 MS는 동의의결 개시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삼성과 계약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연 1조원에 달하는 MS에 대한 삼성의 특허 이용료가 상당 부분 인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19일 “삼성이 MS와의 특허 계약을 LG보다 불리하게 체결했지만 이번에 상당 부분 회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MS는 공정위 전원회의 진행 과정에서 삼성과의 계약 관련 사실을 설명할 때 방청석에 앉아 있던 LG전자 관계자의 퇴장을 요청했다. 이는 LG와 삼성과 맺은 각각의 계약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

공정위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특허 계약 변경을 둘러싼 삼성과 MS의 지루한 힘겨루기는 공정위의 개입으로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그것도 삼성에 유리한 쪽으로 말이다.

버티는 노키아, 속 타는 LG

남은 것은 노키아다. 노키아는 휴대전화 제조부문을 MS에 팔아넘기면서 관련 특허만 갖게 됐다. 과거에는 삼성, LG와 똑같은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서로가 필요로 하는 특허를 주고받는 관계였지만 삼성, LG가 갖고 있는 특허가 필요 없는 특허관리 전문회사(NPE)로 변한 셈이다. 공정위는 노키아가 이를 악용해 불합리한 특허료 인상 등 특허권을 남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문제는 공정위가 노키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느냐다. 일반적으로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은 기업을 인수한(양수) 기업에만 해당된다. 양도 기업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지금까지 MS와 노키아의 기업결합을 심사한 경쟁 당국들도 노키아를 ‘노터치’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미국은 세계적인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애플 말고는 없고, 중국과 대만 제조업체는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삼성과 LG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다. 노키아를 규제해봤자 자국 기업에 도움이 될 ‘꺼리’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과 LG는 상황이 다르다. 특히 통신기술 관련 특허를 많이 보유한 노키아는 삼성보다 LG와 특허 계약을 많이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키아가 보유한 특허는 4만여개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실제 노키아는 지난해부터 LG와 삼성에 특허료 인상을 담은 계약 변경을 요구하고 있고, 협상은 난항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키아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공정위가 자사를 ‘터치’할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만약 공정위가 전 세계적 추세와 달리 자신들에게 기업결합에 따른 시정명령을 내릴 경우 곧바로 부당 소송을 제기해 법적 다툼을 벌일 기세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 사건의 주심을 맡은 공정위 지철호 상임위원은 지난달 5일 MS 동의의결 개시 관련 브리핑에서 “노키아는 모든 것을 MS에 팔지 않고 특허 부문은 남긴 독특한 경우”라며 “노키아가 문제가 있는지 더 검토해보겠다”며 어떤 식으로든 노키아를 터치할 의사를 피력했다.

노키아에 대한 공정위의 선택지는 3가지다. 우선 MS의 동의의결을 승인하는 동시에 노키아에 가격남용 금지 등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두 번째는 MS의 동의의결 사건과 별개로 노키아에 시정명령을 내릴지를 시간을 두고 검토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다른 나라 경쟁 당국처럼 이번 기업결합 건에서 노키아에 아무런 조치 없이 넘어가는 대신 가격남용 행위 등 향후 불공정 행위가 포착될 경우 이를 처벌하는 것이다.

공정위의 고민은 이뿐만이 아니다. MS가 동의의결을 신청하면서 자진시정 방안의 큰 틀을 제시했지만 세부적으로 논의하면서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한 예로 MS는 특허 침해에 따른 판매금지 청구 소송을 국내 법원에서만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공정위는 적용 범위를 미국 법원 등 전 세계로 해야 한다는 쪽이다. 자진시정 방안 대상 역시 MS는 스마트폰만 해당된다는 주장인 반면 공정위는 태블릿PC도 포함시키자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최종 결론을 도출하기까지는 1∼2개월이 더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