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서 통일신라시대 대규모 건물터 확인

입력 2015-03-19 02:32

과연 신라의 1000년 궁터였다. 신라 멸망 이후 처음으로 속살을 드러낸 경주 월성에서 길이 28m에 이르는 대형 건물터(사진)가 나타났고, 토기와 기와류 등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다수 수습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2월부터 월성 내부의 중심부인 석빙고 인근 지역 5만7000㎡에서 벌여온 첫 시굴조사 성과를 18일 공개했다.

시굴조사 결과 기단과 초석(礎石·받침돌), 적심(積心·초석 밑 다짐돌) 등을 갖춘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이 확인됐다. 건물지 중 3호로 명명한 곳은 정면 12칸, 측면 2칸 규모로 길이가 28m에 이르며 폭은 7.1m인 초대형이다.

고배(高杯·굽다리접시)와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 유물들도 나왔다. 토기 중에는 ‘井’ ‘口’ 자 형태 음각 기호를 새긴 것이 발견됐으며 연호를 적은 ‘儀鳳四年 皆土(의봉4년 개토)’나 행적구역 표시로 보이는 ‘習部(습부)’ ‘漢(한)’ 같은 글자가 새겨진 평기와도 확인됐다.

심영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현재까지 확인한 건물지와 담장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한 데다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걸친 토기와 기와류가 출토되는 점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번 시굴조사 성과를 토대로 20일 열리는 문화재위원회에서 정밀 발굴조사 전환을 요청할 예정이다.

월성은 신라 1000년 수도의 궁성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서기 101년 파사왕이 처음 쌓았다. 월성은 1914년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가 성벽 하부 5개 층위를 발굴해 뼈화살촉과 뼈침, 탄화한 곡물, 토기편 등을 확인한 적이 있지만 내부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