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최근 네티즌의 마음을 훈훈하게 달군 블랙박스 영상이 있었습니다. 대전의 한 왕복 7차로 도로에서 차량 10여대가 정지 버튼을 누른 화면처럼 일제히 멈춘 모습이었죠. ‘20초간의 훈훈한 기다림’으로 방송에 소개된 영상은 보행신호가 켜진 동안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한 할머니를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보면서 “해외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우리에겐 그만큼 희귀한 장면이라는 뜻일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18일 한 자동차 커뮤니티에 정반대 영상이 올라와 우리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영상을 올린 네티즌은 “건널목을 건너는 노인을 배려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자조해 공감을 받았습니다.
부산에서 촬영된 이 영상에는 할머니가 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데 자동차들이 무시하고 운행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할머니가 왕복 4차로 횡단보도 중간쯤을 건넜을 무렵 보행신호가 끝났습니다. 차들이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금세 여러 대가 할머니 앞을 지나갔습니다. 할머니는 도로 중간에 꼼짝 없이 갇혔습니다.
그나마 영상을 올린 네티즌이 도와 할머니는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넜습니다. 그가 횡단보도 앞에 도착해 두 차로를 가로질러 선 채 뒤차를 막은 거지요. 혹시 할머니를 못 보고 운행하는 차가 있을까봐 그는 운전석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고 했습니다.
영상을 올린 네티즌은 각박한 세태를 더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뒤에 대형 트럭이 오기에 앞차에 알려주려고 경적을 울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앞차는 경적소리를 빨리 가라는 독촉으로 착각하고 횡단보도를 지나가 버렸습니다. 원래 그 차는 얼마간 할머니를 기다리며 멈춰서 있었거든요.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도 “나라도 뒤차가 경적을 울리면 빨리 가라는 뜻으로 알 것 같다”고 반응했습니다. 이것이 씁쓸한 현실입니다. 노인을 배려하는 일은 도덕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이고, 현실에선 뒷전으로 밀리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죠.
쿡기자를 쓰면서 해외 횡단보도 배려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지난해 싱가포르는 노인과 장애인이 신호등에 카드를 찍으면 보행신호 시간이 늘어나는 정책을 시작했네요. 그럴 듯하게 포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배려를 강제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운전자를 멈추게 할 반짝 아이디어가 아니라 약자를 위한 작은 배려와 잠깐의 여유 아닐까요.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친절한 쿡기자] “어! 우리 할머니가 횡단보도에… 이런 마음으로 잠시 기다려주세요”
입력 2015-03-19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