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인연’ 무대 올리는 연출가 김광림… “사회와 시대, 제도가 개인에게 주는 상처 치유받기 힘들죠”

입력 2015-03-19 02:31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 연극 ‘날 보러와요’로 유명한 극작가 겸 연출가 김광림(63·사진)이 오랜만에 신작을 선보인다. 20일부터 4월 5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 오르는 ‘슬픈 인연’이다.

국립극단이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획한 테마 ‘해방과 구속’의 일환으로 내놓는 작품이다.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일본으로 도피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고문을 못 견디고 아버지를 간첩이라고 거짓 자백한 데 따른 죄의식으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서울대 법대를 중퇴하고 전파상을 운영하던 주인공은 우연히 첫사랑을 만난 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18일 명동예술극장 연습실에서 만난 김광림은 “예전부터 사회와 시대, 제도가 개인에게 준 상처는 치유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나처럼 60살 언저리인 사람들은 젊은 시절 교육, 성, 윤리, 이념의 억압 속에 살았고 이것은 정서적인 장애로 남게 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을 그만두고 생계 때문에 가게를 운영하는 극중 주인공의 패배적인 모습은 실제로 내 지인의 삶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의 억압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상황은 바뀌었지만 심각한 빈부격차나 취업난, 낮은 계층이동성 등에 내몰린 젊은층 역시 수많은 억압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겉으로는 멀쩡해도 경제적, 정서적으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고 했다.

한국연극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극단 연우무대의 창단(1977) 멤버인 그는 초창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많이 썼다. 검열과 분단 문제를 각기 다룬 ‘달라진 저승’ ‘사랑을 찾아서’ 등이 대표작이다. 1996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쓴 ‘날 보러와요’는 소문난 이야기꾼인 그의 재능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다.

하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양식적 실험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2002년 제자들과 만든 극단 우투리는 전통연희를 현대적으로 양식화하는 데 주력해 유럽 등에서 호평을 받았다.

‘슬픈 인연’은 김광림이 스토리텔러로 다시 대중 앞으로 다가선 작품이다. 과거 억압에서 비롯된 상처의 치유가 주제임에도 스토리 자체는 중년의 불륜이 줄기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 파주 아트센터에서 공연될 계획이었지만 개관이 늦어지면서 국립극단으로 무대를 옮겼다. 그는 “대중적인 코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다”면서도 “하지만 공연을 유심히 보면 첼로로 장단을 맞추는가 하면 장면을 변주하고 반복하는 등 양식 실험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밴드를 만들어 콘서트를 연다. 상처를 치유하는 화합의 순간을 음악 앙상블로 표현한 것이다. 강신일 방은진 최용민 등 쟁쟁한 중견배우를 비롯해 출연진 전원이 1∼2년 전부터 색소폰 피아노 첼로 비올라를 연습했다.

글=장지영 기자, 사진=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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