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커지는 AIIB] “동맹보다 실리”… 中 주도 新금융질서 탄력받는다

입력 2015-03-18 02:51 수정 2015-03-18 18:17



영국에 이어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들이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기로 합의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G7(주요 7개국) 가운데 4개국이 AIIB 동참을 결정하면서 중국발 경제지도 개편의 신호탄인 AIIB가 급격히 세를 불려가는 모양새다.

AIIB는 향후 1000억 달러(약 113조원) 규모의 자본금을 운영할 아시아 인프라 개발을 위한 투자은행이며 미국 주도 세계은행(WB)의 잠재적 라이벌로 꼽힌다. 중국은 내년 출범을 목표로 창립 회원국 모집에 막바지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30개국이 가입을 결정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 온 미국과 일본 두 경제대국이 일찌감치 불참을 선언한 가운데 미국의 눈치를 보던 서방 각국은 지난주 영국이 가입 선언으로 물꼬를 트자 일제히 동참을 선언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 등 주요국들에 이어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참가를 저울질하고 있다. 호주마저 긍정적 검토를 시사하면서 미국의 주요 우방들은 ‘아시아의 경제·무역질서 재편에 동승한다’는 경제적 실리에 이끌리고 있다.

FT는 ‘중국의 돈 자석이 미국 우방들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중국의 투자 유치를 바라는 영국과 주변국들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더구나 개발금융 경험이 풍부한 선진국들로서는 최근 떠오르는 동남아 국가들의 인프라 건설에 선제적으로 진출할 기회를 놓치기 싫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 국가들로서는 최근 미국의 호경기와 강(强)달러 시대를 맞아 지나치게 커진 미국 경제의 영향력을 견제한다는 차원의 고려가 포함됐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겨냥, 지난해 의욕적으로 발족한 AIIB에 유럽 주요국이 손을 내밀면서 미국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됐다.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아시아에서 AIIB의 출범을 둘러싼 신경전은 향후 수십 년간 경제와 무역의 주도권을 두고 벌어질 미·중 간 ‘경제 대전(大戰)’의 전초전 성격을 띠게 됐다.

미국은 AIIB에 대한 경계심을 표출하면서 AIIB가 기존 WB 등 경제기구와 마찬가지로 지분의 공정한 분배 및 운영상 투명성 등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촉구해 왔다. 특히 미 정부는 영국 등 우방의 참여 움직임에 대해 이례적으로 비난과 경고를 쏟아냈다. 하지만 AIIB를 둘러싼 이 같은 일련의 전개를 두고 FT는 “미국이 고립돼 있으며 심술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라며 “워싱턴이 21세기 권력 이동에 관한 의도치 않은 신호를 보냈다”고 지적했다.

유럽에 이어 만약 미국의 주요 우방인 한국과 호주까지 중국의 손을 들어줄 경우 일단 양측의 1라운드는 중국의 완승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최근 중국이 미국에 맞서 거둔 가장 큰 외교적 승리로 평가되는 분위기다.

한편 중국 언론들은 AIIB에 창립회원국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입신청 시한이 원칙상 17일로 마감됐다고 보도했다. 기존 MOU(양해각서) 체결국들의 동의를 받기 위해 2주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마감시한은 31일이라고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져 가입을 고민 중인 국가들을 압박하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된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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