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중 사드 갈등] 팍스 아메리카나 vs 팍스 시니카… 美·中 힘겨루기 양상

입력 2015-03-18 02:44 수정 2015-03-18 09:55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영상국무회의 시작 전 심각한 표정으로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국 배치 문제가 안보사안을 넘어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대 ‘팍스 시니카’(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의 대결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미·중이 이번 사안의 본질적 성격보다는 서로 힘을 과시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어서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세계 양강(G2)의 충돌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국방부가 중국의 간섭에 상당한 불쾌감을 드러내긴 했지만, 사드 배치 여부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대 팍스 시니카=중국은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정치·군사 분야에서도 미국의 대항마 역할을 자임한다. 동북아시아를 이런 역할의 시험무대로 삼는 중국은 사드배치 문제를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한·미, 한·일 안보동맹으로 굳어진 팍스 아메리카나 구도를 깨고 팍스 시니카를 형성하겠다는 야심이다.

이런 의도는 이틀 전 방한해 전날 외교부와 협의를 가진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의 직접적·노골적 ‘압박’ 발언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중국의 우려를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한 류 부장조리의 말에 대해 한 정부 관리는 “오만함과 건방지다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미국 역시 사드를 단순히 한반도 방위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시스템에 포함된 초고성능 X밴드 레이더를 통해 중국을 안방 보듯 들여다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방법은 간접적·외교적 압박 방식이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16일 발언을 살펴보면 안보사안을 둘러싼 한·중 갈등을 표면화시키면서 은근히 한·미 동맹의 견고함을 과시하는 형태다.

◇돌발변수에 당혹스러운 정부=그간 우리 정부는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3NO’(요청·협의·결정 없다)로 일관해 왔다. 이 사안을 공론화할 경우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미·중의 충돌뿐 아니라 국내의 반대여론을 의식한 스탠스였다.

그러나 이런 정부 방침은 집권여당에 의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국회 국방위원장 출신인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드 배치 필요성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이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한 것이다. 곧바로 새정치민주연합의 반대가 이어졌고, 진보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전날 류 부장조리는 직접 새누리당을 찾아가 사드 문제를 제기하기까지 했다. ‘적절한 균형’과 ‘안보이익에 의한 독자 판단’이라는 정부의 원칙이 급작스러운 돌발변수에 의해 흔들리게 된 셈이다.

일단 정부는 중국에 대해서는 안보주권을 내세우며 반대 움직임을 무마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직접 사드를 구매해 우리 군에 배치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미국 미사일방어체계에는 편입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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