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 당국으로부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와 관련된 미국의 입장이나 한·미 간 협의 상황을 알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미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한국과 이 문제에 대해 협의하지 않고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10일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사드의 한국 배치에 관해 동맹국인 한국과 지속적인 협의를 하고 있다”고 답변해 큰 파장이 일었다. 커비 대변인은 바로 발언을 번복했지만 의심이 증폭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방부의 다른 관계자들도 사드 문제에 관한 한 공식 입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 문제에 관해 위로부터 ‘함구령’ 내지는 공식 입장을 벗어나는 발언을 일절 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미 국방부가 사드를 한국에 들여놓고 싶어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6일(현지시간)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국방부 관계자들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 추진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다만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주장은 반박하고 있다. 일본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망과 기타 탐지장비로 이미 중국의 군 움직임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드를 한국에 배치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대응하는 데 효율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주한미군이 2만8000명 배치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 군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한반도에 고성능의 미사일방어체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국방·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최근 국민일보에 “현재 한국군의 미사일 방어망인 패트리엇 시스템으로는 북한의 노동미사일(사거리 1300㎞)은 물론 스커드미사일(사거리 500㎞)도 요격하기 어렵다는 게 핵심”이라며 “북한이 집착하는 핵과 미사일이 한국을 위협할 수 없게 하려면 사드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1000기 정도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넷 연구원은 중국의 반대와 관련, “중국의 주요 도시를 사정권에 둘 수 있는 사거리 1500㎞의 한국군 현무3C 미사일에 대해서는 항의하지 않으면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해 중국이 반대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드 배치가 가져올 한·미 군사동맹의 공고화와 사드 배치 결과로 한국을 겨냥한 중국 미사일에 대해 조기경계 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게 중국이 사드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아메리칸대 국제정치학과 이지영 교수는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려는 것은 북한 미사일 요격을 포함해 다목적용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큰 틀의 대(對)아시아 군사전략 차원과 함께 글로벌 미사일방어(MD)체계에 한국을 포함시키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드 배치 추진이 중국 견제를 가장 염두에 둔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됐지만 미래 중국이 가져올 위협에 대비해 미국이 위험을 분산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한국 입장에서 세계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이 너무 사이가 좋아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관계가 나빠지면 중간에 끼여 운신 폭이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 한국 정부가 취하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 미국 조야에 친(親)중국 노선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정엽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은 “최근 많은 미국의 중국전문가들이 중국의 발전이 민주주의와 역내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긍정론을 포기하고 회의론으로 돌아서고 있다”면서 “이들 중국전문가들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모호한 입장을 단순히 친중국 노선으로 기울었다고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이 사드 배치를 결사반대하고 나선 것 역시 단순히 사드 배치로 인한 안보적 영향뿐만 아니라 동북아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의 ‘헤게모니 싸움’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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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18 02:30 수정 2015-03-18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