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체험 관광지로 또 한번 뜨는 경북 예천 회룡포마을

입력 2015-03-19 02:36
경북 예천 회룡포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회룡포마을 전경. 용틀임을 하듯 내성천 물길이 마을을 휘돌아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멀리 산과 산 사이에는 하트(♥)가 자리하고 있다.
풍양면 삼강나루에 복원된 삼강주막.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뿅뿅다리.
회룡포마을의 소나무숲.
경북 예천의 회룡포마을은 물돌이동이다. 내성천 물길이 휘돌아가면서 만들어놓은 '육지 속 섬'이나 다름없다. TV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최근 생태체험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각광받고 있다. 인근 삼강주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는 생태탐방로도 조성돼 있다. 겨우내 얼었던 마음을 따뜻한 봄 햇살에 녹이려 예천으로 나섰다.

내성천과 회룡포마을의 참모습을 한눈에 보기 위해 먼저 회룡포전망대를 찾았다. 장안사를 지나 비룡산(240m) 중턱의 호젓한 숲길을 10여분 오르면 가슴이 확 트이는 천혜의 광경을 만나게 된다. 봉화군 물야면의 선달산(1236m) 기슭에서 발원해 수많은 산자락을 어루만지며 유유히 흘러내린 내성천이 마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용틀임을 하듯 휘감아 돌며 빠져나가는 자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마을 너머 뒤편 산과 산 사이에서 하트(♥) 모양의 산을 찾는 묘미도 있다.

마을은 폭이 60m에 불과한 조롱목에 매달려 간신히 섬 처지를 면했다. 병목에서 한 삽만 뜨면 섬이 될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경관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처럼 아름답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6호,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최우수상 등 화려한 수식어로도 모자랄 정도다. 같은 물돌이동인 안동 하회마을이나 영주 무섬마을보다 자연풍광이 훨씬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마을에는 논밭이 많지만 과거 이곳에는 밖에서 보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정도 소나무가 무성했다고 한다.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는 나룻배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워 한때는 죄인들의 유배지였고 6·25전쟁 때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회룡포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회룡포로 향했다. 회룡포마을을 바깥세상으로 이어주는 길은 개포면소재지에서 들어오는 임도와 내성천을 가로질러 놓인 철다리다. 쇠파이프로 교각을 세우고 건설공사장에서 비계(飛階)를 설치할 때 쓰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깔아 놓은 다리로 1997년 처음 가설했다. 구멍 사이로 물이 차오르면 퐁퐁 소리가 난다고 해서 처음에는 ‘퐁퐁다리’라 불렸다. 이후 뿅뿅다리로 잘못 알려지면서 본래 이름 대신 뿅뿅다리로 유명하다. KBS 드라마 ‘가을동화’의 주인공 준서와 은서가 어린 시절 놀던 곳이다.

길이가 100m쯤 되는 뿅뿅다리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출렁거린다. 사람의 몸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출렁거림이 묘한 재미를 준다. 섣불리 걸음을 내딛지 못하던 사람도 금세 다리의 율동감에 매료될 정도다.

뿅뿅다리 밑을 흐르는 내성천 물빛은 깨끗하다. 물길 폭이 매우 넓고 수심도 얕아서 물살은 순한 편이다. 과거 회룡포마을 주민들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내성천을 건너다녔다고 한다. 강물이 불어나면 나룻배를 이용하고 강물이 줄어드는 겨울철에는 외나무다리나 섶다리를 놓아 지나다녔다. 회룡포마을과 용포마을 사이 내성천에도 뿅뿅다리가 가로지르고 있다.

회룡포마을에 사람이 들어와 산 것은 조선 고종 때부터다. 예천 인근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소나무를 베고 논밭을 개간했으며 현재 9가구 20여명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 이름도 10여 년 전까지는 의성포라 불렸다. 유명세를 타면서 의성군에 가서 의성포를 찾는 사람이 종종 생기자 회룡포로 바뀌었다.

옛날에 이 마을은 해마다 어김없이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내성천의 하상(河床)이 지금보다 5m 이상 높았기 때문이다. 마을도 원래는 지금 터보다 높은 남쪽 구릉에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이후 내성천을 따라 제방이 축조된 뒤로 강물이 범람하지 않게 되자 주민들이 생활하기에 편리한 지금의 터로 집을 옮겨지었다.

마을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기를 안은 엄마처럼 내성천 물길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안은 데다 강 건너편에 우뚝한 비룡산 줄기가 병풍처럼 드리워진 덕택이다. 하룻밤쯤 머물며 느긋하게 쉬어가고픈 마음이 절로 꿈틀거린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캠핑장이 2012년 회룡포마을 안에 조성됐다. 강둑과 맞닿아 있어 내성천변의 올레길(2.6㎞)이나 백사장을 거닐기에 안성맞춤이다. 밤하늘에 보석처럼 빛나는 별을 헤아리기도 좋고 새벽마다 온 세상을 뽀얗게 뒤덮는 안개에 파묻히는 운치도 맛볼 수 있다.

대대로 농사를 짓던 이 마을이 관광지로 변모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번거로운 일도 생긴다. 관광 성수기에는 노래방기기까지 틀어대는 바람에 시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삶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음식점을 겸하는 민박이 몇 곳 들어섰지만 주민들의 주업은 여전히 농사다. 마을의 총 넓이는 49만㎡(약 15만 평)이다. 그 중 농경지가 22만㎡(6만6500여 평)에 이른다. 마을 규모에 비해 농경지는 비교적 넓은 편이다.

회룡포마을을 보듬은 내성천은 다시 한번 크게 에돌아 흘러 풍양면 삼강나루에 다다른다. 이 부근에서 강원도 태백 땅에서 발원한 낙동강 본류와 충청도 죽월산에서 발원한 금천을 만난다. 옛날 낙동강 하류 쪽에서 실려 온 온갖 공물과 화물은 물론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던 예천 이남의 경상도 선비들이 거치면서 삼강나루에는 주막이 번성했다고 한다.

삼강나루가 쇠락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반듯하고 편리한 신작로와 다리가 곳곳에 개설되면서 낙동강 물길이 교통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나그네의 발길이 끊긴 삼강나루에서는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작은 주막집을 운영했다. 2005년 90세의 일기로 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1900년쯤 처음 지어졌다는 삼강주막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다행히 같은 해 12월 경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07년부터 예천군이 복원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유 할머니가 쓰던 좁은 부엌에는 솥 두 개, 바닥에 묻어놓은 술독 하나, 나무로 만든 찬장 하나가 있다. 한글을 몰랐던 유 할머니의 외상장부였던 흙벽의 눈금이 눈길을 끈다. 그저 보기에는 아래위로 그어놓은 금에 불과하지만 유 할머니에게는 사람과 액수를 구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암호였다.

삼강주막 뒤편에는 화려했던 세월을 기억하는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변함없이 서 있다. 250살쯤 된 이 나무는 7개의 큰 가지로 나눠지면서 넓게 펼쳐져 삼강주막에 운치를 더해준다.

예천=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