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정종성] 위대한 이름 ‘아버지’

입력 2015-03-18 02:12

11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유난히 부모 사랑을 독차지한 친구가 있다. 특히 친구의 아버지는 칠순 가까운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책값을 벌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짐을 진 채 동네를 돌며 부서진 우산을 수선했다. 점심 값을 아끼려고 물과 건빵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가 일쑤였는데, 친구의 아버지는 결국 위장에 큰 탈이 나서 돌아가셨다. 그후 친구는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다.

최근 친구와 나는 6·25전쟁 이후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덕수’라는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담은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했다. 덕수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구두닦이가 되고, 동생의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독일 광산으로 향하는가 하면 여동생의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날아가 사선을 넘나든다. 평생 가족을 위해 홀로 삶의 무게를 견디고 희생하며 노인이 된 덕수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릴 때, 친구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고치러 다니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았다.

친구와 나는 러셀 크로우 감독의 영화 ‘워터 디바이너’를 볼 기회도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호주의 ‘코너’라는 남성이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다가 행방불명이 된 세 아들을 찾아 헤매는 휴먼 드라마였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수색을 만류하고 심지어 위협과 방해도 있었지만 코너는 포기하지 않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결국 오지에 갇혀 있던 큰아들을 찾아냈다. 친구는 영화 관람 내내 아들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 코너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친구는 ‘가시고기’의 일생을 담은 모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기억한다고 했다. 가시고기 암컷이 알을 낳자마자 죽으면 수컷이 알이 부화할 때까지 지킨다. 천적(天敵)에 온몸으로 맞서 싸우면서. 그리고 알이 빨리 부화되도록 산소 공급을 위해 자신의 몸을 지느러미 삼아 끊임없이 부채질하다가 결국 기진맥진해 쓰러진다.

온몸에 상처가 나면서 죽음 직전에 이르러도 수컷은 알을 떠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화한 새끼들이 아버지의 몸을 뜯어먹으면서 영양을 공급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새끼들에게 살점이 다 뜯기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강바닥에 밀려 나온 아버지 가시고기의 모습을 보면서 친구는 며칠을 울었다고 했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기 전 적어도 세 번에 걸쳐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유대교 사람들에게 붙잡혀 엄청난 모욕을 당하고 결국 극형에 처해질 것을 예고했다(마 16:21, 17:22∼23, 20:18∼19). 그것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요 10:17∼18).

심리학자들은 홀로 모든 문제를 떠안으려는 심리 유형을 ‘메시아 신드롬’ 혹은 ‘구원자 콤플렉스’라고 명명하며 건강하지 못한 심리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메시아의 희생 없이 기독교의 사랑이 완성될 수 없었듯이 이 땅의 아버지들은 치러야 할 대가를 분명히 알면서도 두려움 없이 자식을 위한 희생의 길을 걸어간다.

며칠 전 친구는 아들 결혼식에서 ‘폭풍 눈물’을 흘렸다. 남매를 힘들게 유학을 보냈는데,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박사까지 받아 어엿한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남매를 교육시키기 위해 그동안 여러 금융권을 전전하다가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법원의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었다. 친구는 자식을 위해 백골이 되어 강바닥에 누워 있는 가시고기나 물과 피를 남김없이 쏟은 십자가의 예수처럼, ‘메시아 신드롬’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이 땅의 아버지들을 떠올리면서 가장 위대한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아버지!”

정종성 교수(백석대 기독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