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상춘 (1) 하나님과 함께 한 약속의 열매 ‘상록수장학재단’

입력 2015-03-18 02:03
이상춘 이사장이 회사와 상록수장학재단 현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사람들은 나를 ‘성공한 기업인’이라고 부른다. 아마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 ㈜에스씨엘을 비롯해 4개의 회사를 운영하며 연매출 1500억여원을 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150억원 정도를 투입한 상록수장학재단을 설립했으니 기업의 사회공헌 측면에서도 많은 점수를 주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난 이렇게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들이 성공의 척도로 비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 이유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약속의 열매’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처절하게 고통스러웠던 사업의 위기와 절망의 순간마다 ‘너와 함께하겠다’고 하신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주셨다. 이제 끝이라며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을 때에도 피할 길을 주시고 기적의 손길을 내미셨다.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나의 삶, 나의 회사, 나의 가족은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약속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다. 이것은 지금 이후로도 내게 이어질 약속이 분명하다.

나의 간증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 시골소년이 주님을 만나 어떻게 변화되고 또 성공했으며 나눔의 삶을 살고 있는지가 큰 주제다.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좌정하셔서 용기와 힘을 주시고 놀라운 축복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발견하길 원한다.

내 고향은 경북 김천 대덕면 관기리 467번지다. 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나지막한 뒷산을 끼고 벌판이 시원스레 펼쳐진 우리 마을은 50여호가 한 가족처럼 어울려 살았다.

1956년,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나는 동네 동갑친구만 13명이 있었다. 우리 집도 벼농사와 누에, 담배 농사를 지었지만 모두 찢어지게 가난했다. 6남매 맏아들인 나는 한번도 새 교과서로 공부해본 적이 없다. 다 찢어진 선배 책을 물려받았고 도화지 살 돈을 달라고 어머니를 무척이나 괴롭혔다. 도시락 못 싸가는 것은 다반사였다. 리더십이 있었던 나는 동네 골목대장으로 신나게 뛰놀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근처 냇가에서 고기도 잡고 여름이면 멱 감고 겨울엔 썰매를 탔다. 소 먹일 풀을 베고 나무를 한 짐씩 해오는 것도 우리의 몫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 뒤에 작은 교회가 생겼다. 관기교회란 간판을 건 이곳은 뛰놀기만 하던 우리에게 전혀 다른 문화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불시에 예배 초청을 받은 우리들은 목사님의 성경인물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 맞춰 준비하는 성극과 합창단 일원이 되는 것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새벽송 돌기는 아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간간이 학용품과 간식을 받는 재미도 쏠쏠했다. 신앙은 소리 없이 내 가슴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김천시내에 있는 미션스쿨인 시온중학교에 입학했다. 동급생 13명 중 불과 5명만 중학교에 입학했다. 동네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김천까지 너무 멀어 하숙을 해야 했기에 어려운 살림에 모두 포기했던 것이다. 그래도 장남인데 중학교는 가야 하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배려로 까만색 교복을 입게 된 나는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약력=1956년 김천 출생, 숭실대 졸업, ㈜에스씨엘 대표이사, 중국 원일정밀유한공사 사장, 재단법인 상록수장학재단 이사장, 재경김천향우회장, 김천대 명예교수, 국립암센터 이사, 동탑산업훈장(모범 기업인) 수훈, 아너소사이어티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