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난해부터 동부그룹 김준기(71) 회장 일가의 횡령 및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한 자금 흐름을 추적해 왔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금융 당국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토대로 김 회장에게서 자녀들에게로 여러 차례 뭉칫돈이 흘러들어간 단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0∼2013년 김 회장 주변 계좌에서 자녀 관련 계좌로 수십억원이 송금됐다는 게 의혹의 요지였다.
동부그룹 비자금 수사는 정부의 부정부패 엄단 기조를 타고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금융조세조사2부가 서울남부지검으로 이관됐지만 동부그룹 사건은 신설된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한동훈)에 배당돼 서울중앙지검에 그대로 남았다. 해당 부서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관련 수사를 전담하는 곳이다.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6일 전국 검사장회의에서 경영진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서민경제에 피해를 준 사례로 동양그룹과 STX그룹을 언급하면서 공정거래조세조사부의 ‘역할론’을 강조한 바 있다.
장기간 유동성 위기를 겪어온 동부그룹은 금융권에서 “‘제2의 동양사태’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아 왔다. 동부그룹은 2013년 11월 동부하이텍,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 등을 골자로 한 3조원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동부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김 회장 등 경영진의 오판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세계적 철강 불황 속에 선제적 구조조정 대신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시도하다 자금난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계열 상장사들로부터 지난해보다 27.7% 증가한 배당금을 받아 회사 상황에 비춰 합당치 않은 처사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회사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김 회장 일가는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이나 STX그룹 강덕수 회장과 마찬가지로 법적,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검찰은 계좌추적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미 김 회장을 ‘피의자’로 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비자금 조성 경위를 본격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김 회장이 계열사 임직원에 대한 급여 지급을 가장해 비자금을 만들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한 관련자 소환조사도 조만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부정하게 조성된 자금 용처가 자녀들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됐는지도 살펴볼 계획이다. 검찰은 비자금의 상당 액수가 자녀들의 주식 매입을 위한 ‘실탄’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례로 동부하이텍은 2010년 12월 보유하고 있던 제조업 분야 주력 계열사인 동부한농(현 동부팜한농) 주식 5000만주를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의 장남과 장녀는 각각 212만7000주(3.33%)와 78만주(1.22%)를 150억원과 55억원에 인수했다.
그간 검찰은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상황 등을 고려, 수사 속도를 조절해 왔다. 지난해 하반기 금융조세조사2부가 가전업체 모뉴엘의 사기 대출 사건에 전 인력을 투입한 것도 본격 수사를 늦춘 요인이 됐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적절한 수사 시점이 언제가 될지 보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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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17 09:22 수정 2015-03-17 0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