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휩싸인 지 1년이 됐다. 러시아와 크림 정부는 이를 기념해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지난 1년간 러시아와 서방의 외교 갈등은 극도로 악화돼 세계는 ‘신냉전’ 시대로 돌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 병합 이후 단단한 지지층을 확보하면서 서방과 맞서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 병합 1주년을 맞아 국영TV 로시야1이 사전 녹화해 15일(현지시간) 방영한 다큐멘터리 ‘크림, 조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친서방 정권 교체 혁명이 일어났을 때 표면상 유럽이 야권을 지지하고 있었지만 실제 혁명을 배후 조종한 건 미국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러시아는 핵무기를 투입할 준비도 돼 있었다”고 밝혔다. 푸틴은 그러나 “키예프에서 정권 교체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진 크림을 우크라이나에서 떼어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크림 병합이 그렇게 빠르게 이뤄진 것이 심지어 놀랍기까지 하다”고 했다. 서방의 비판도 맞받아쳤다. 그는 “크림은 역사적으로 러시아 영토이며, 친서방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곳의 주민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친(親)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로 망명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월, 크림자치공화국에서 실시된 주민투표 결과 96%가 넘는 찬성으로 러시아 귀속이 결정됐다. 크림 병합에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선 친러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 교전이 발생해 1년간 6000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푸틴이 국제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러시아 고립정책을 펼치고 있다. 서방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곤두박질쳤고, 지난달 물가는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0% 가까이 올랐다.
러시아의 위협적인 행보는 나토와 EU에 가입한 발트해 3국에도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최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에 군수물자를 제공하는 한편 3000명의 병력을 동원하는 3개월간의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러시아와 크림 내에서 푸틴의 지지세는 더욱 탄탄해졌다. 지난달 조사 결과 러시아에서 푸틴 지지율은 74%로 지난해 1월(46%)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 현재 크림 주민들도 91%가 크림의 러시아 병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크림 병합 이후 지정학적 대립은 러시아 내 정치 판도까지 바꿔 놨다”면서 “푸틴 대통령 지지세는 더 두터워진 반면 반대파 목소리는 힘을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일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푸틴 대통령은 1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콘스탄티노프스키궁에서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만나면서 11일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그간 떠돌았던 건강이상설, 늦둥이설 등과 관련해 그는 기자들에게 “가십 없는 인생은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농담했으나 이유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AP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건강한 모습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푸틴 “크림사태 때 핵무기 투입 준비했다”
입력 2015-03-17 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