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간 담합 사건에서 ‘면죄부’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온 리니언시 제도(자진신고자 감면제도)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자진신고만 하면 과징금을 깎아주고 고발 조치도 면제해 주는 공정거래위원회 관행에 검찰이 법적 근거를 지적하며 앞으로는 ‘협의해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담합 기업이 리니언시 제도 뒤에 숨어 형사처벌을 피하던 관행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검찰은 ‘고발요청권’을 활용해 리니언시 제도를 이용한 기업도 위법 행위가 무거우면 수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서울중앙지검은 김진태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 행사로 지난 12일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SK건설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해당 기업 수사에 착수했다고 16일 밝혔다. 2013년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검찰총장 요청이 있으면 공정거래위원장이 의무적으로 해당 기업을 고발토록 하고 있다. 법 개정 뒤 검찰총장이 고발요청권을 행사하기는 처음이다. 신설된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한동훈)가 향후 수사를 맡는다.
검찰은 새만금 공사 담합에 대한 공정위 조사 내용을 검토한 결과 SK건설에 낙찰된 공사 금액이 1000억원을 넘는 등 사회적 영향이 커 이같이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SK건설은 한국농어촌공사가 2009년 발주한 새만금 방수제 건설공사에서 동진3공구 입찰 담합을 주도했다. 이런 사실이 적발돼 지난 3일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22억원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공정위는 SK건설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공정위에 적발된 12개 업체는 모두 고발을 피했다. 당시 공정위는 담합이 개별 공구별로 그쳤던 점, 기업들이 조사에 잘 협조했던 점 등을 감안해 고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들러리 업체’까지 참여시켜 경쟁을 제한하는 등 불공정 행위가 심각하다고 보고 SK건설에 대해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12개 업체 중에는 SK건설보다 과징금이 많은 곳도 5곳 있었다. 검찰이 이들을 빼고 SK건설만 고발을 요청한 건 공정위의 관행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1·2순위로 자진신고를 하거나 증거를 제공하며 조사에 적극 협조한 업체는 임의적으로 고발을 면제해 왔다. 검찰 관계자는 “공정위 방식을 존중하다보니 비슷한 규모의 담합 주도자, 이익 향유자가 고발 대상에서 빠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진다. 검찰은 리니언시로 고발 면제를 받은 기업이라도 위법 행위가 심각하면 공정위와 협의를 거쳐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담합 주도’ ‘이익 향유’ 정도를 리니언시 여부보다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 필요한 경우 고발요청권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담합 기업의 고발을 면제해 주는 리니언시와 의무적으로 고발토록 하는 고발요청권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공정거래법상 리니언시는 필요적 면제가 아닌 임의적 면제 조항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리니언시 제도로) ‘면제할 수 있다’고 돼 있지 ‘면제해야 한다’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檢, 담합 기업 면죄부 ‘리니언시’에 제동
입력 2015-03-17 0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