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난해부터 동부그룹 김준기(71)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정황을 포착해 자금 흐름을 추적해 왔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금융 당국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토대로 김 회장에게서 자녀들에게로 거액의 뭉칫돈이 건너간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010∼2013년 김 회장 관련 계좌에서 자녀들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로 수십억원이 송금된 정황을 잡고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섰다.
다만 대상 계좌가 광범위해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봐주기’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검찰이 철도·원전·해운 등 공기업의 민관유착 비리 수사, 모뉴엘의 3조원대 사기대출 수사에 매달려야 했던 상황도 동부그룹 비자금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하지 못한 요인이 됐다. 단시일 내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할 대기업 비자금 수사의 특성상 본격적인 강제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동부그룹이 구조조정 중인 상황 등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동부그룹 비자금 수사는 정부의 부정부패 엄단 기조를 타고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가 서울남부지검으로 이관됐지만, 동부그룹 사건은 신설된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한동훈)에 배당돼 서울중앙지검에 남았다. 해당 부서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수사를 전담하는 곳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적절한 수사 시점이 언제가 될지 보고 있었던 것”이라며 “검찰이 동부그룹을 상대로 봐주기 수사를 했던 것은 아니다. 왜 계좌추적을 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6일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자금난으로 사회적 피해를 낳은 동양그룹과 STX그룹을 언급하며 공정거래조세조사부의 역할을 강조한 점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장기간 유동성 위기를 겪어온 동부그룹은 금융권에서 “‘제2의 동양사태’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아 왔다. 동부그룹은 2013년 11월 동부하이텍,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 등을 골자로 한 3조원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동부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김 회장 등 경영진의 오판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세계적인 철강 불황 속에 선제적 구조조정은커녕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시도한 결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계열 상장사들로부터 지난해보다 27.7% 증가한 배당금을 받아 회사 상황에 비춰 합당치 않은 처사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회사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수백억대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김 회장 본인과 총수 일가는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이나 STX그룹 강덕수 회장과 마찬가지로 사회적·도덕적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비자금이 자녀들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됐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비자금의 상당 액수가 경영권 대물림에 사용될 주식 매입대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부하이텍은 2010년 12월 보유하고 있던 제조업 분야 주력 계열사인 동부한농(현 동부팜한농) 주식 5000만주를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의 자녀인 남호씨와 주원씨는 각각 212만7000주(3.33%)와 78만주(1.22%)를 150억원과 55억원에 인수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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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17 02:15 수정 2015-03-17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