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와 AIIB 사이… 美·中 압박에 韓 외교 ‘진퇴양난’

입력 2015-03-17 02:26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를 놓고 한국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바로 우리나라의 ‘안방’에서 세계 양강(G2)인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이익갈등을 벌이고 있어서다. 미·중이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우리에게 압박하면서 정부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가는 모양새다.

16일 외교부 청사에서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를 만난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는 가장 먼저 사드와 관련해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미국의 한반도 내 사드 배치 입장에 우리 정부가 반대해 달라는 사실상의 압박이었다. 류 부장조리의 “우리 측 우려를 중요시해 달라”는 말은 얼마 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신중하고 적절하게 처리하길 희망한다”는 언급보다 훨씬 수위가 높다.

사드는 우리나라와 북한은 물론 중·미의 이해가 상충하는 휘발성이 높은 사안이다. 정부가 미국 요청대로 주한미군기지 내 배치만 허락한다 해도 중국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게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친중(親中)외교노선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한·중 관계도 다시 멀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중국의 압박에 호응할 수도 없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이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전쟁억지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안보정책에 대놓고 반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가 이 문제에 대해 ‘요청이나 협의, 결정도 없다’는 이른바 ‘3 NO’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 이처럼 강력 반대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기인한다.

중국은 류 부장조리 방한을 통해 이미 사드 견제 수위를 노골적으로 높인 것으로 판단된다. 사드 체계에 포함된 고성능 X밴드레이더가 중국 대륙 전체를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이 사안을 순수하게 군사적 측면에서 보지 않고, 미·중의 아시아 패권 대결 차원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사안을 통해 자신들의 ‘입김’이 한국에 먹혀들어 가는지 가늠해 보겠다는 중국의 태도로 인해 군사적으로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 사드가 외교사안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외교가 일각에선 “가능한 한 빨리 우리 입장을 정하고 주변국에 이를 충분히 알려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류 부장조리는 AIIB 창설 가입국 명단에도 한국의 이름을 올려 달라고 압박했다. AIIB는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금융기구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안한 기구다. 사실상 ‘팍스차이나’ 금융시대를 열겠다는 야심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AIIB에 가입하면 미국은 결코 좋게 봐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강력한 한·미동맹 상태가 이완될 소지도 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우리는 두 사안을 항상 ‘제로섬 게임’으로,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국익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면서 “미·중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며 양국은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분야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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