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대를 중심으로 생겨난 ‘인디(Indie)음악’이 올해로 성년이 됐다. 독립적이란 뜻의 ‘인디펜던트(Independent)’에서 따온 이름만큼 ‘인디음악’은 작사·곡부터 프로듀싱까지 앨범 제작의 전반적인 과정을 뮤지션이 독립적으로 해내는 구조다. 뮤지션이 소속돼 있는 레이블에서는 곡의 유통이나 마케팅을 돕는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인디음악계에서는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4년 만에 부활한 홍대 클럽데이도 이를 기념한 행사 중 하나. 음원사이트 벅스는 ‘인디20’이란 이름의 편집앨범을 지난 12일부터 네 차례에 걸쳐 발표하고 있다. 앨범에는 국내 인디음악의 시초로 꼽히는 뮤지션 크라잉넛, 노브레인부터 현 인디음악계를 대표하는 불나방 스타 소세지 클럽, 최고은,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등이 부른 21곡이 수록된다.
◇홍대 라이브클럽에서 시작된 인디음악=1990년대 중반기 홍대와 신촌 인근에서 문을 연 드럭, 블루데빌, 롤링스톤즈 등 라이브 클럽에 신진밴드가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서 인디음악이 태동했다. 1995년 4월 드럭에서 열린 그룹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1967∼1994)의 1주기 추모 공연, 96년 5월 홍대 앞 주차장 거리에서 개최된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 드럭 소속 밴드들의 ‘스트리트 펑크쇼’ 등을 인디음악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해 10월 드럭에서 함께 활동하던 크라잉넛과 옐로우치킨의 앨범 ‘아워 네이션(Our nation)’은 국내 첫 인디앨범으로 꼽힌다.
언니네 이발관(1996), 델리스파이스(1997)의 앨범 출시를 비롯해 ‘말달리자’로 대표되는 크라잉넛(1998)과 홈레코딩으로 화제가 된 롤러코스터(1999)의 1집 등 완성도 높은 곡이 세상에 나오면서 인디음악은 주목받았다. 2000년대 들어 펑크, 모던 록에서 벗어나 포크, 팝, 일렉트로닉, 힙합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된 인디음악은 국내 대중음악시장의 다양성에 가장 큰 축으로 작용했다. 2000년대 중반 파스텔뮤직, 해피로봇레코드, 붕가붕가레코드 등 인디 뮤지션이 소속돼 있는 레이블이 확대, 흥행하며 인디음악도 전성기를 맞았다.
인디음악계의 2막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곡은 2008년 등장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커피’다. 이른바 ‘88만원 세대’가 느낀 상실감을 복고풍의 멜로디 속에 코믹하게 담아낸 이 곡은 돌풍을 일으켰고 주류 음악계로 인디음악을 끌어들이는 데 일조했다. 이듬해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 ‘최우수 록 노래’ ‘네티즌이 뽑은 남자아티스트’ 등 3개의 트로피도 거머쥐었다.
◇인디음악의 정체기? “새 흐름이 생성되는 중”=장르나 내용 등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다양한 소재와 장르에서 등장하고 있는 인디음악은 20∼30대 소비층을 저격했다. 발매된 음반 종류도 2009년 약 300장에서 지난해 2500장에 이를 만큼 시장이 커졌다. 반면 현재의 인디음악 시장을 두고 장기하와 얼굴들과 국카스텐, 10cm의 등장 이후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염려의 시선도 있다. 스타급 인디 뮤지션의 부재나 음반시장의 전반적인 불황이 이유로 거론된다.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 대표는 17일 “정체보다 안정기라는 표현이 정확하다”며 “500석의 공연장을 채울 수 있는 밴드들이 여럿 등장 했을 만큼 인디음악도 정착단계다. 그 안에서 새 흐름이 계속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다양성’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음반 제작부터 유통, 마케팅까지 재밌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디음악계를 두고 상업적으로 변질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은 기형적인 이미지로 비쳐지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인디음악은 대중들에게 ‘배고픈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하다”며 “방송 활동이나 대형 기획사 등과 협업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기도 하는데 뮤지션이 어떤 자세로 음악을 해나가지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인디음악계 20주년… 인디음악 훨훨 날아보자
입력 2015-03-18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