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한국사회 갈등의 아이콘 ‘종북’] ‘親北’보다 공격적인 ‘從北’

입력 2015-03-17 02:29 수정 2015-03-17 09:22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는 사건 직후 ‘종북(從北) 인사’로 규정됐다. 북한과 비슷한 주장을 하고, 북한에 여러 차례 다녀왔고, 북한이 과거 그의 행동을 옹호했다는 게 근거였다. 경찰은 이적성(利敵性) 수사에 나섰고, 국가보안법 적용 논란이 일었다.

10년 전이었다면 김씨는 ‘친북(親北) 인사’로 불렸을 것이다. 종북이란 말이 나오기 전까지 북한과 가까운 이념적 성향을 일컫는 용어는 친북이었다. 이 사건을 ‘종북세력의 테러’라고 규탄하는 쪽도, ‘종북몰이를 한다’고 비판하는 쪽도 망설임 없이 종북이란 용어를 썼다.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거리에서도 친북이란 말은 사라졌다.

종북. ‘북한을 추종한다’는 뜻의 이 단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어떤 표준어 못지않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인터넷에도 수시로 등장하는 보편적 어휘가 됐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용어’는 왜 친북에서 종북으로 바뀐 것일까. 이 용어의 교체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종북이란 말의 기원은 진보 정치권이다. 2007년 대선 직후 민주노동당에서 자주파와 평등파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종북세력’은 평등파(노회찬 심상정 등)가 자주파(이석기 이정희 등)를 비판하며 사용한 용어였다. 민노당 분당 과정에서 이 말이 외부로 알려지며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종북의 의미를 확 와닿게 해준 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었다. 2012년 기자들과 만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란 말을 했다. 이는 종북에 ‘국가 정체성을 부인하는 위험한 존재’란 뉘앙스를 강하게 심었다. 이 용어는 점차 의미를 확장해 가더니 북한과 무관해도 종북이라 공격하는 경향마저 생겼다. 세월호 유족을 종북세력이라 부르는 극단적 행태도 나타났다.

종북은 과거 비슷하게 쓰인 ‘좌익(左翼)’ ‘빨갱이’ ‘용공(容共)’ ‘친북’보다 더 강력한 공격성을 지닌 언어다. 좌익은 위험한 사람이란 뉘앙스를 담고 있지만 소신을 가진 인격체란 점까지 무시하진 않는다. 친북은 종종 ‘친미(親美)’와 대비해 쓰였을 정도로 ‘희석된’ 용어였다. 반면 종북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북한)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로 규정한다.

친북에서 종북으로 용어의 교체는 절묘한 시점에 이뤄졌다. 종북이 언론에 본격 등장한 2008년은 진보정권 10년을 마감하고 보수정권이 출범한 때였다. 친북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종북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용어인 셈이다.

일각에선 종북이란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한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대를 사회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뉘앙스를 가진 언어다. 민주적 토론 자체를 막아버리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합리적 판단 없이 북한을 무조건 따르는 세력이 실제로 있다. 종북을 종북이라 하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종북 프레임’이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 중 하나란 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일 “리퍼트 대사 피습을 놓고 한국인이 둘로 갈라졌다”고 보도했다. ‘종북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주장과 ‘과장된 색깔 논쟁이다’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거였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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