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從北 프레임 해부-사법기관 판단] ‘이정희 종북’ 민·형사소송 법원 “배상하라”-檢 “무혐의”

입력 2015-03-17 02:37 수정 2015-03-17 09:13

‘종북’은 법적 용어는 아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사건이나 통진당 해산심판에서 사법부는 직접적으로 종북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이들을 종북이라 규정하지도 않았다. 다만 일련의 민·형사 소송을 통해 사법기관에서 종북을 어떻게 정의하고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다.

◇“종북은 친북과 달리 부정적이고 치명적 의미”=법원은 종북을 ‘인격권을 침해하는 용어’로 본다. 특정인을 근거 없이 종북이라고 비난하면 배상금을 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경우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법원은 종북 관련 발언의 수위나 전체 내용, 그 진실성 등에 근거해 배상 판단을 달리한다.

보수 논객 변희재(41)씨는 2012년 이정희(46) 옛 통합진보당 대표를 ‘종북·주사파 조직인 경기동부연합을 추종하는 인물’로 표현했다가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종북이라는 표현에 대해 ‘북한을 추종하는 것 또는 그러한 성향’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종북이라는 단어 자체는 상황에 따라 폭넓게 사용된다고 봤다.

당시 재판부가 해석한 종북의 의미는 세 가지였다. ①북한 관련 사건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②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옹호하지만 정부 대북정책에 비판적이고 북한의 대내외 정책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사람들 ③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적 세력 등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따라서 종북 표현이 사용됐을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종북에 대해 “친북과는 다른 부정적이고 치명적인 의미를 갖는 용어”라고 좀 더 좁게 해석했다.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주사파와 같은 계열에 둘 수 있고, 헌법 기본질서를 부정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의 용어라는 것이다. 1·2심은 모두 “이정희씨가 경기동부연합에 소속됐다거나 연결돼 있다는 구체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며 “변씨가 이씨 등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률적 판단은 상황 따라 제각각=같은 사건에서 검찰 판단은 다소 달랐다. 검찰은 이씨 등이 변씨를 고소한 사건을 2012년 9월 ‘무혐의’로 종결했다.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엄격하게 따지는 형사사건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였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제시한 종북 기준에 비춰볼 때 이씨를 ①번과 ②번 유형의 종북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종북은 법률상 용어가 아니고, 국가보안법에도 나오지 않는다”며 “종북 개념을 법률적, 사회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김성환 서울 노원구청장을 ‘종북 성향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표현했다가 고소당한 정미홍(57) 정의실현국민연대 대표에 대해서도 지난해 5월 “단순 의견 표명”이라며 무혐의 처분했다. 반면 법원은 “특정 인사를 종북이라고 지칭할 경우 평판이 크게 손상될 게 명백하다”며 정씨의 1300만원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을 ‘종북의 상징’이라고 지칭했다가 벌어진 손해배상 사건에서도 서울남부지법은 지난해 3월 “종북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 주체사상을 신봉한다는 의미”라며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종북의 개념을 폭넓게 해석해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도 있다. 국보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종북 성향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월 종합편성채널 방송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종북세력의 선전·선동 수단으로 의심된다”고 발언했다가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민언련이 국보법 폐지 주장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종북 성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의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다른 재판부가 제시한 기준과 비교할 때 ②번 유형까지 종북이라고 의심받을 수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재판부는 “북한을 추종하면서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가능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또 종북 표현과 함께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구모(36)씨는 지난해 7월 세월호 유족들에 대해 “평생 만져보기 힘든 거액을 챙기려 한다. 종북주의자들이 여론조작 선동을 하고 있다”고 인터넷 댓글을 게시했다가 모욕 혐의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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