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이 지난 14일 영국 런던 의회광장에 세워졌다. 간디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변호사 생활을 접고 인도로 돌아가 독립운동을 시작한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간디는 2007년 먼저 자리를 잡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나란히 템스강을 굽어보게 됐다. 옆에는 1920년과 73년 각각 제막한 에이브러햄 링컨, 윈스턴 처칠의 동상도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의회광장은 영국 정치의 중심지다. 동쪽으로 국회의사당과 빅벤이 바라보이고 북쪽의 관가와 남쪽의 웨스트민스터사원, 서쪽의 대법원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제막식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참석했고 문화장관이 사회를 봤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의 유명한 광장에 동상을 세우는 것은 세계 정치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한 명에 대한 감명 깊은 헌사”라고 축사를 했다.
간디나 만델라는 영국에는 자국식 사회질서에 저항한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었다. 처칠은 생전 간디를 선동가로 혹평하며 ‘차라리 죽었으며 좋겠다’고 공공연하게 비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정치의 중심지에 두고 기리는 영국의 모습은 자신들만의 잣대가 아니라 인류 일반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려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의회광장에 간디 동상 세워 기리는 영국
지난해 1월 중국 정부가 하얼빈에 안중근기념관을 개관하자 일본 정부는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까지 나서 “안중근은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맹비난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이토 히로부미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짓밟은 원흉”이라고 맞받았다. 중국 외교부 친강 대변인도 “그렇다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14명의 A급 전범은 뭐냐”면서 한바탕 설전을 치렀다.
간디 동상 제막식에 대해서는 인색한 평가도 없지 않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캐머런 총리가 영국군에게 대량 학살을 당했던 인도 북부 마을을 2013년 방문했을 당시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영국 BBC도 “총선을 앞두고 인도계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캐머런 총리는 당시 비록 사과란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영국 역사에서 대단히 수치스러운 사건”이라고 심심한 유감을 표시했다. 1997년 이곳을 찾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고통스러운 사건”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영국 정부는 케냐 마우마우 독립투쟁에 자행했던 식민지배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공식사과하고 2000만 파운드가량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일본과는 매우 다른 행보다.
일본 정부도 균형 잡힌 역사관 회복해야
최근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한국 소개 내용 가운데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이 삭제됐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보는 기본가치를 과연 우리는 갖고 있지 않은지, 혹은 대통령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언론인이 기소됐다고 이웃국가의 가치관까지 재단해도 좋은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주변국을 침탈하고 아시아 전역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과거사를 무화(無化)하거나 정당화하려는 기본가치라면 공유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단 과거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일 뿐 아니라 양국이 같이 지향해야 할 미래와도 깊이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영국의 사례를 되새겨 보기 바란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도쿄 한복판에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균형 잡힌 역사관을 회복했으면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정제된 조언을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식민지배는 다르다’며 배척하려만 말고 국가 주도의 거대 폭력으로 야기했던 과거의 숱한 고통들을 직시하기 바란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
[돋을새김-김의구] 안중근동상이 도쿄에 설 수 있다면
입력 2015-03-17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