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압박에 日기업들 임금 인상… 美·獨도 올려

입력 2015-03-16 02:03

최근 일본항공(JAL)이 14년 만에 기본급을 인상하기로 한 데 이어 일본의 주요 전자업체들도 잇따라 기본급 인상 대열에 동참했다. 히타치제작소, 도시바, 파나소닉, 미쓰비시, 후지쓰, NEC 등 전자기기 분야 6개 대기업은 올해 임금협상(춘투)에서 월 기본급을 역대 최대 규모인 3000엔(약 2만8000원) 올리기로 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업체 도요타도 월 기본급을 2002년 이후 최대 규모인 4000엔(약 3만7400원) 인상하기로 했다고 NHK 등 일본 언론들이 15일 보도했다. 이들 업체는 앞서 지난해 봄에도 각각 2000엔(히타치제작소, 파나소닉), 2700엔(도요타)씩 월급을 인상한 바 있다.

일본 기업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잇따라 파격적인 임금인상에 나서고 있는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연일 기업에 임금인상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 압승 직후 아베 총리는 노동계와 재계, 정계 인사들이 함께하는 노사정회의를 개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법인세를 내년까지 3.3% 포인트 인하한다는 파격적인 카드를 제시한 뒤 임금지급 총액 증액과 설비투자 등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지난 1월에도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렌 회장 등과 골프 회동을 갖고 임금인상을 호소하는 등 재계에 연일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도 일본 상장기업의 42%가 지난해 인상 폭 이상의 임금인상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정권은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기 위해 먼저 돈을 풀어 엔저 효과를 만든 뒤 그로 인한 기업 실적을 바탕으로 월급을 인상시켜 경기 침체를 돌파겠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늘어난 기업의 부(富)가 월급에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가 올해 임금협상의 관심사라고 분석했다.

최근 월마트를 필두로 한 미국 유통업체들도 잇따라 임금인상을 발표하는 등 근로자의 소득을 늘려 장기적으로 소비를 유도하는 전략은 세계적인 추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월마트의 최저임금 인상은 미국의 소득 불평등 정도를 완화시키고 중산층 형성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앞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신년 국정연설에서 현행 7.25달러(약 8200원)인 최저임금을 10.1달러로 인상할 필요성을 거론했다.

독일도 올해부터 모든 직종에서 시간당 8.5유로(약 1만1400원)의 최저임금제를 적용시켰다. 고용 감축 우려도 있었지만 경기가 본격적 회복세를 탄 상황이었기에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축 우려보다는 내수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런 선택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지난해 일본 대기업 평균 임금상승률은 2.28%로 지난 17년간을 통틀어 최대치였지만 경기지표가 기대만큼 개선되지는 않았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확정치가 연율 기준으로 전 분기 대비 1.5% 증가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지난해 2분기와 3분기에 마이너스였다가 회복된 것이지만 당초 잠정치인 연 2.2%보다 하향 수정된 것이다. 이 때문에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이 기간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전 분기 대비 0.1% 감소해 아베노믹스의 효과에 대해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