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의 한 여고 수학시간. 선생님은 다양한 형태의 향수병을 몇 개 들고 와 “이번 주 목표는 각 향수병의 면적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 화장대나 잡지에서 흔히 보던 것들인데 뜯어보니 곡선과 직선이 혼재돼 있었다. 곡면이 너무 많다. 선생님은 곡면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인 ‘적분(積分)’ 개념을 설명하며 함께 계산했다.
#수학통계 수업은 사회 과목과 연계해 진행됐다. 학생들에게 통계청의 연도별 ‘학생 휴대전화 이용 실태’ 자료가 제공됐다. 이를 기초로 학급 내 교우관계와 휴대전화 이용 행태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신문에 실린 빅데이터 활용 기사가 수업 교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교육부가 15일 발표한 ‘제2차 수학교육 종합계획’(2015∼2019)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수학 교실의 모습이다. 목표는 수학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풀이’를 벗어난 이런 수학 수업이 가능할까. 종합계획은 ‘스토리텔링 수학’을 들고 나왔던 이명박정부 ‘수학교육 선진화방안’의 후속 버전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겠다는 취지가 비슷하다. 다만 이번엔 학습량과 난이도를 낮추는 방안이 동시에 추진돼 주목된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 이래서 생겨났다=학생들은 ‘과학의 언어’인 수학을 싫어한다. 정규 교육과정이 학생을 수학에서 멀어지게 하는 구조다. 우리나라 수학 교육과정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다시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마다 급격히 어려워진다. 공부하는 범위가 급격히 넓어져서 그렇다. 초등학교는 사실상 ‘산수’이고 중학교 이후 본격적인 수학을 공부하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지식을 주입해야 따라갈 수 있게 돼 있다.
특히 미·적분학은 외국 고교에선 선택 사항이다. 주로 대학과정에서 배운다. 우리나라 고교생은 문과생도 필수여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따지면 ‘선행학습’을 하는 셈이다. 또 대학에 가려면 오(5)지선다형 시험에 익숙해져야 해 기계적인 문제풀이 요령이 요구된다. 그 요령을 ‘잘 가르치는’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고 학생과 학부모는 고통을 받는다.
2012년에 나온 선진화방안은 학습 범위를 그대로 두고 교수법에만 손을 댔다. 부드럽게 실생활에 맞춰 가르치라는 건데 학습량이 많고 평가방식도 그대로여서 현장에선 ‘비효율’이 됐다. 서울의 한 수학교사는 “공식을 외우게 하고 문제 푸는 시간도 빠듯한데 다른 건 사치다. 뒤떨어지는 아이들 챙기는 건 무리”라고 했다.
◇‘재미있는 수학’ 성패, 역시 수능에 달렸다=예상대로 선진화방안은 실패했다. 선진화방안이 나온 2012년 중학교 수학 기초학력미달 학생은 3.5%였는데, 지난해 5.7%로 증가했다. 고교생은 4.3%에서 5.4%로 늘어났다.
교육부는 선진화방안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 고시되는 9월에 수학의 학습량과 난이도를 낮추겠다고 했다.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에서 수학은 모든 학생이 배우는 공통수학, 일반선택 수학, 진로선택 수학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교육과정은 대입제도의 지배를 받기에 결국 수능 시험 범위가 세 가지 중 어디까지로 확대되느냐에 따라 학습량이 결정된다.
수능이 공통수학에만 한정된다면 학습량이 대폭 줄어든다. 그러나 일반선택이나 진로선택으로 시험 범위를 확장할 경우 학습량은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문·이과 통합 수능은 2021학년도에 시행되므로 대입제도 3년 예고제에 따라 2017년 하반기에 방식이 확정된다.
문제는 수학계와 대학들의 반발이다. 이들은 수학 범위를 줄이면 ‘학력이 저하된다’ ‘대학 교육이 파행한다’고 주장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최수일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지금 정부 방침은 맞는 방향이다. 다만 실행 의지가 문제”라며 “과거 선진화방안처럼 발표만 해놓고 유야무야될지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초중고 수학 이번엔 정말 재밌어질까?
입력 2015-03-16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