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국민은행이 어디죠? 급해요.”
지난 6일 오후 1시 서울 강동구 송내동의 커피전문점에서 젊은 여성이 다가와 다급히 물었다. 차를 마시던 강동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김승수(50) 경위와 동료 형사 2명이 답을 해줬는데, 이상했다. 여성은 내내 안절부절 못했고 휴대전화도 귀에서 떼지 않았다. 은행 위치를 알려주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형사들은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혹시 이상한 전화 받는 거 아니에요?” “보이스피싱 아닙니까?” 300여m를 함께 뛰며 형사들이 물었지만 여성은 “아니다. 귀찮게 하지 말라”며 상대하려 들지 않았다. 은행에 들어가자마자 현금자동인출기(ATM)에 서서 어디론가 돈을 부치려 했다.
경찰 신분증을 제시해도 소용없었다. 김 경위가 여성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대신 통화하려 하자 전화가 뚝 끊겼다. 여성은 그제야 보이스피싱에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여성은 인근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이모(25·여)씨였다. 오전 10시쯤 자신을 검사라 밝힌 사람에게 “당신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사용됐다. 사기 공범이 아님을 입증하려면 통장 정보를 제출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당황한 이씨는 사기범이 만든 가짜 검찰청 사이트에 주거래은행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등을 입력했다. 사기범은 곧장 그 계좌에서 680만원을 빼갔다. 돈을 더 챙길 욕심으로 “다른 통장에 있는 돈도 이 계좌에 입금해야 한다”고 속였다. 난데없는 검찰 전화에 겁에 질린 이씨는 혐의를 벗고자 부랴부랴 나머지 480여만원도 부치려던 참에 형사들과 마주친 거였다. 이씨는 이튿날에야 안정을 되찾고 김 경위 등을 찾아가 감사 인사를 남겼다. 김 경위는 “정상적인 공공기관은 어디에 가서 어떤 행동을 하라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당부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보이스피싱 사기] 경찰이 “사기” 말리는데도… 피해자 “귀찮게 하지 말라”
입력 2015-03-16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