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중동 4개 순방국 중 한 곳인 아랍에미리트의 왕세제는 자신의 어머니가 박 대통령 인생 스토리를 먼저 말해줄 정도로 관심이 많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박 대통령은 주변국 정상들도 만나기 어려운 공식 서열 1·2·3위 인사를 연이어 만나기도 했다. 모두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국력이 그만큼 높아지고 커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호기심과 인기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다.
비단 중동 국가뿐만이 아니다. 각국 정상들이 참가하는 국제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존재감은 눈에 띈다. ‘아이스 브레이킹(ice-breaking)’용 유머 구사도 박 대통령이 뒤지는 편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호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일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첫 세션에서 다른 나라 정상들이 시간을 초과해 발언하는 바람에 성장전략과 관련된 선도발언 기회를 놓쳤다. 뒤이은 업무만찬 발언 주제는 무역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성장과 무역은 손의 양면과 같다”며 미처 못 했던 발언까지 진행했다. 그런 뒤 정상들에게 “너무 빨리 말씀드려 얼마나 이해하셨는지 모르겠다. 나는 하도 빨리 얘기해 숨이 차 죽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약간 어색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박 대통령의 이 한마디로 만찬장엔 웃음이 터지고 분위기도 한결 편안해졌다.
2013년 11월 박 대통령의 영국 방문 길. 박 대통령은 당시 한복 치마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아찔한 순간에도 침착하게 대처했다. 돌발 상황임에도 “드라마틱 엔트리(극적인 입장이라는 뜻)”라고 해 현지 관계자들을 안심시킨 데 이어 퇴장할 땐 “콰이어트 엑시트(퇴장할 때는 조용히)”라며 재치 있게 넘긴 것이다.
박 대통령은 때론 참모들에게도 농담을 던진다. 이번 순방 도중 전용기 내에서 기자들을 만나기 직전 몇몇 비서진에게 “그동안 여러분이 저에게 기자들을 소개했지만 이번에는 제가 여러분을 소개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최근 새로 임명된 청와대 홍보수석과 춘추관장을 기자들이 잘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한 유머다. 박 대통령의 유머엔 정치인으로서의 내공도 담겨 있다는 게 오랜 보좌진들의 말이다.
하지만 취임 이후 줄곧 일반 대중에게 비친 박 대통령은 근엄하고 건조하며 절제된 모습이다. 국가원수가 지나치게 가벼워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한 차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엄숙한 이미지들이 중첩돼 필요 이상의 ‘소통 부족’ 이미지를 고착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얼마 전 박 대통령은 카리스마와 보안의식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김기춘 비서실장 후임으로 상반된 이미지의 이병기 실장을 임명했다. ‘소통’이 주무기인 이 실장을 박 대통령이 기용한 것은 자신의 스타일에도 변화를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미 일부 변화의 조짐도 있다.
내친김에 박 대통령이 앞으로 스타일 변화를 추진한다면, 그리고 소통을 확대한다면 그 방식은 기왕이면 좀 더 담대하면서도 파격적이면 어떨까. 때론 엄숙한 회의나 긴장된 기자회견 대신 소소한 일상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경제 살리기와 국가 혁신도 좋지만 가끔은 대통령이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자연인 박근혜’를 소개하는 식 말이다. 또 예고 없이 출입기자들을 찾아와 한마디씩 던지는 격의 없는 모습을 기대한다면 이것 또한 무리일까. 경제 살리기와 국민행복, 문화융성, 창조경제는 중요한 국정과제다. 하지만 두꺼운 교과서 외에 가끔씩은 가벼운 수필집을 대하는 식의 여유가 이젠 대통령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
[뉴스룸에서-남혁상] 변화는 좀 더 담대하게
입력 2015-03-16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