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임금체불 방치하면 일자리 창출도 헛수고일 뿐

입력 2015-03-16 02:40
임금체불은 다른 나라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극성을 부리는 사회악이다. 서양의 경우 노동자들은 체불이 쌓이기 전에 새 일자리를 구하거나 법적 조치를 취한다. 같은 직종 노동자 간 임금격차가 크지 않은 데다 기업 단위를 넘나드는 노동시장이 발달해서 구직기간과 임금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직장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데다 직장을 옮기기도, 밀린 임금을 받아내기도 쉽지 않다. 일부 사용자들이 이런 상황을 악용해 고의·상습적으로 임금 지급을 미루는 관행이 거듭되다 보니 사회적 적폐 수준으로 심각해진 것이다.

국민일보 12일자에 따르면 임금체불은 건설·제조업을 넘어 이제 산업 전반에 걸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도소매, 숙박, 유통, 요양보호사 등 사회서비스업, IT산업, 심지어 과외교사에 이르기까지 서비스업과 영세 자영업의 체불이 심각하다고 한다. 건축설계사무소, 영화제작 현장 등에서 자행되는 ‘열정페이’, 최저임금 이하만 지급하는 ‘후려치기’형, 체불 청산 대신 미약한 벌금 납부로 때우는 ‘배째라’형, 임금 떼어먹고 폐업한 후 다른 가족 명의로 회사를 신설하는 ‘위장폐업’형 등 체불 유형도 다양하다.

정부는 체불 사업주에 대한 무분별한 온정주의부터 버려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체불액 부가금제마저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3∼6개월 이상 고의체불 사업장에 대한 자동 폐업을 법으로 정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사업주가 나중에 다른 회사를 차리더라도 일단 고의적 장기 체불은 막을 수 있다. 건설·제조업에서 하도급 대금 지급을 미루는 원청업체, 서비스업에서 과도한 이익률을 고집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주의 연대책임이나 협의의무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임금이 제때 지급되는 것은 기초적 경제질서다. 임금도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이 계속된다면 해당 노동자 가구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경제의 비효율도 커진다. 따라서 이 경우 사업을 그만두든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 체불임금 대책은 영세 자영업을 포함한 한계기업의 청산을 앞당겨 타기업이 인수토록 하거나 새로운 기업으로 대체되도록 하는 산업 합리화 정책과 함께 가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