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이명찬] 독·일 역사반성 비교의 허망함

입력 2015-03-16 02:31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방일 중 “과거사 정리가 화해의 전제”라며 “한·일 관계도 중요한데 그러려면 (일본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웬디 셔먼 발언에 울적했던 마음이 메르켈 총리의 발언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대응을 보면 허망하다는 느낌이 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독일과 일본은 다르다”고 응수했고, 산케이신문은 “일본군 병사들이 폭주해 (개별적) 전쟁범죄가 있었을지 몰라도 나치처럼 특정 인종을 박해·말살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논조가 일본인 다수의 인식일 것이다.

식민지배 사죄한 나라 없다는 日 우익들

14일 한 학회에서 유럽통합 연구자 엔도 겐(遠藤乾) 교수는 마치 독일의 역사 반성은 100점이고 일본의 역사 반성은 빵점이라는 인식이 회자되는 것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독일이 사죄한 대상은 프랑스가 아니라 유대인이었고, 지독한 인종말살 정책에 대한 사죄였다고 했다. 즉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였던 독일의 폴란드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우익들은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한 나라는 없다고 주장한다.

1951∼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도 일본정부는 일본과 한국의 식민지배 전쟁 피해 청산, 즉 과거 문제를 해결·극복하자는 입장이 아니었다. 한·일 재산청구권문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4조에 입각해 논의됐다. 강화조약의 근거였던 도쿄재판에서도 식민지 피해 문제는 재판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90년대부터 ‘변화’가 있었다. 무라야마 담화(95년), 한일공동선언(98년), 간 담화(2010년) 등에 나타난 변화다. “식민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 여러 국가의 사람들에게 크고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통절한 반성의 뜻을 밝히고 마음으로부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무라야마 담화)는 인식이 나왔다.

그럼에도 우익들의 망언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일본은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있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작금에는 아예 90년대의 반성을 인정하지 않고 80년대 이전으로 되돌아가려는 ‘반동’이 일어나고 있다. ‘역사수정주의’가 그것이다. 이는 일본의 식민지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65년 한일청구권협정 시 일본정부는 식민지 착취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개발 지역의 경제·사회·문화적 근대화가 일본의 공헌이라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그것이다.

유대인 말살과 위안부 문제는 다르다니

이러한 인식 탓에 90년대 초 새롭게 불거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지금까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청구권협정이 전후 문제를 마무리짓는 것이고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법적 처리를 했으며 지금 와서 이를 뒤집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무성의 이러한 입장은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한일공동선언에서 표명한 식민지배·침략전쟁의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안고 있다. 역사 문제로 양분돼 있는 일본 국내정치 상황으로 인해 어쩌면 외무성은 곤혹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발표를 마친 엔도 교수에게 위안부 문제는 지독한 인권유린 문제이니 독일이 유대인들에게 사죄한 것처럼 위안부 할머니들께 사죄하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더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는 유대인 인종말살 정책과 종군위안부 문제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독일과 일본을 비교해 일본을 비판하는 수고의 허망함이 느껴진다.

이명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