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출근길 라디오에서 주한 미국대사 피습 속보가 나왔다. 현장에서 붙잡힌 범인 김기종은 “전쟁 훈련 반대”를 외쳤다고 했다. 김씨가 누군지 알지 못했지만 사건은 ‘종북 수사’로 이어질 거란 예감이 스쳤다. 실제 그렇게 됐다. 김씨 집에서는 북한 원전과 이적 의심 서적이 다수 나왔다. 청와대와 여당은 즉시 ‘종북세력의 범행’으로 규정했다. 이어 경찰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김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 착수를 선언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를 국보법으로는 입건조차 못하고 검찰로 넘겼다. 경호 실패에 따른 문책이나 비난이 두려워서였을까. 수사는 쫓기듯 조급했다.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할 때부터 김씨의 반미구호 등을 이유로 국보법을 넣으려 할 정도였다.
그러나 국보법 혐의를 고작 1∼2주 수사해서 밝힌다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공안 당국이 수년간 특정인의 동향을 추적 관찰하고 증거를 모아도 무죄율이 높은 게 국보법 사건이다. 김씨는 국보법 전과가 없고, 공안 당국의 감시 대상도 아니었다. ‘관심 밖 인물’이란 뜻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1주일 남짓 만에 무에서 유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혹여 수사 ‘성과’보다는 국보법이란 이름을 덧칠해 얻는 ‘효과’에 더 관심을 둔 것은 아닐까.
올리퍼 푀치의 소설 ‘사형집행인의 딸’은 17세기 독일 남부 숀가우 지역의 마녀재판 얘기다. 아이들이 연이어 살해되자 흥분한 주민들은 마녀의 짓이라 단정하고, 마을 산파(産婆)를 마녀로 몰았다. 도시의 지도자는 산파가 범인이 아님을 알면서도 ‘숀가우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산파의 자백을 받아내려 한다.
국보법 사건은 종종 마녀사냥으로 비유돼 공격 받는다. 공안 수사가 더욱 ‘정도(正道)’를 가야 하는 이유다. 김씨의 범행이 아무리 엄중해도 미리 결론을 내놓고, 혹은 이해득실을 따져 꿰맞추려 해선 안 된다. 무턱대고 칼부터 뽑아 수사 불신을 초래하면 ‘진짜 종북세력’이 뒤에서 웃는다.
지호일 차장 blue51@kmib.co.kr
[한마당-지호일] 김기종과 종북 수사
입력 2015-03-16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