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최 부총리의 임금인상론 안착하려면

입력 2015-03-16 02:49

회사 근처의 한 김치찌개집은 맛과 가격이 좋아 가끔 찾는데 요즘은 우선순위에서 조금 밀려났다. 주방과 계산대를 각각 부인과 남편이 맡는 전형적인 가족 중심의 자영업 가게인데 얼마 전부터 서빙을 도우미 대신 남편이 직접 하면서 서비스의 질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

7000원 안팎의 밥 한 끼에 서비스 운운하는 게 조금 멋쩍기는 하다. 하지만 3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가게에 워낙 일손이 달리다보니 반찬 한 접시 더 얻어먹기도 힘들고, 점심시간의 즐거움은 짜증으로 바뀌기 일쑤다. 비용절감 때문이라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벌어진다. 직장인들이야 조금 참고 밥 한 끼 때우면 그만이지만 그 식당에서 서빙을 했던 아주머니들은 일자리를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요즘 부쩍 강조하는 말이 ‘임금인상’인데 재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되레 재계는 임금인상의 부작용으로 앞서 김치찌개집에서와 같은 예를 든다. 임금을 올리면 사업주는 사람을 아예 쓰지 않거나 가족이 대신 그 일을 떠맡는 상황이 벌어져 일자리가 되레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과연 그런가. 이 문제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최 부총리가 지난해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임금인상’의 시대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임금인상론은 직전 이명박정부가 역설했던 낙수효과(落水效果)를 사실상 버리고 새로 내세운 전략이기 때문이다.

낙수효과란 경제 성장의 기운이 먼저 대기업·부유층을 채우고 나면 이후 중소기업·저소득층으로도 흘러넘칠 것이라는 뜻인데 사실상 허상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는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았고 소득격차가 경제성장을 훼손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의 초점이 소득격차 개선에 있었음을 감안하면 최 부총리의 임금인상론은 핵심을 찌른 것이다.

그럼에도 최 부총리의 임금인상론이 겉도는 듯 보이는 것은 타기팅이 분명하지 않은 탓이다. 소득격차 개선을 위한 임금인상이라면 당연히 임금인상의 대상은 중소기업 근로자, 소규모 영세 사업장 근로자, 시간제 근로자 등 이른바 저임금 근로자에게 맞춰졌어야 했다. 그런데도 최 부총리가 경제5단체장과 만나 임금인상을 강조해 재계의 엉뚱한 반발만 샀다.

재계는 다양한 반론을 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2006∼2013년 가계소득이 30.6% 늘었지만 같은 기간 소비지출 증가율은 22%에 불과했다며 임금인상이 소비지출에 별 영향을 못 준다고 지적한다. 바로 소득주도성장 불가론의 근거다. 하지만 이는 한국 저소득층의 터무니없이 높은 주거비용 부담을 간과한 주장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또 한경연은 한국의 임금 수준이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볼 때 OECD의 중상위권이라는 지표를 앞세워 임금인상 불가론을 편다. 그러나 이 지표는 어디까지나 평균수치일 뿐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OECD 평균을 훨씬 웃도는 한국적 특징을 설명하지 못한다.

저임금 근로자란 소득이 중위소득의 3분의 2 미만인 이들을 가리키는데 2012년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OECD 평균이 16.3%인데 비해 한국은 25.9%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한국 임금 수준이 높다는 말은 임금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피상적인 주장에 불과한 셈이다.

최 부총리의 임금인상론이 제대로 먹혀 근로자들의 소비가 늘고 경제가 선순환하자면 근로자 전체의 임금인상에 앞서 저임금 근로자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풀어야 한다. 임금인상의 취지 내지 시대적 요청에 대한 설득과 더불어 성장보다 분배를 앞세운 구체적이고 치밀한 세부 정책이 있어야겠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