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안에 판매원까지 있는 슈퍼마켓이 차려졌다. 하지만 진열된 상품은 모두 속이 텅 비었다. 이 슈퍼마켓은 중국 작가 쉬전(38)의 작품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한·중·일의 문화지형도를 살펴보기 위해 3국의 1970년대 생 대표 작가에게 ‘미묘한 삼각관계’라는 주제를 던졌다. 쉬전과 함께 선정된 작가는 한국 양아치(45), 일본의 고이즈미 메이로(39)다.
90년대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경험하며 성장한 쉬전은 국가적 관심사가 아닌 예술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상하이 슈퍼마켓’을 통해 예술의 상품화를 비판했다. 3명의 작가들은 아버지 세대가 겪은 전쟁은 기억하지만 그에 대한 원초적 감정에서 벗어나 있고, 고도경제성장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공통점이 있다. 작품 주제는 영토 분쟁 및 과거사 문제로 얽힌 3국간 정치적 관계를 떠올리게 하지만 해석 방식은 ‘미묘하게’ 달랐다.
일본 작가 고이즈미는 어떨까. 천장에 설치된 영상 ‘아버지’는 전쟁 트라우마를 가진 아버지에게 바치는 작품이다. 2차대전 당시 도쿄 하늘을 날던 미국 폭격기 B29의 잔상을 잊지 못하는 아버지는 긴장할 때면 이 폭격기를 그렸다. 작가는 아버지에게 천장에 그 비행기를 그리도록 하고 이를 촬영했다.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에서는 가미카제 조종사 복장을 한 청년에게 출격을 앞둔 상황을 연기하도록 했다. 그는 점점 격앙돼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라고 울부짖지만 마지막에 “내 아들아, 가지마”라는 어머니의 절규가 들리며 극적 반전을 이룬다. 일본에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국 작가 양아치는 신작 ‘바다 소금 극장’을 통해 미래의 극장 형태를 제시한다. 일방적 관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극장을 제시해 골라 보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즉시성’에 종속돼 가는 현실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도 고이즈미의 작품 ‘아버지’ 옆에 아버지가 비행기를 그리며 내는 괴성을 시각화한 미디어 작품을 내놓았다. 국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한국인의 초상인 셈이다. ‘한·중·일 미묘한 삼각관계’ 전시는 5월 10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韓·中·日 40대, 그들에게 과거사 의미는… ‘미묘한 삼각관계展’
입력 2015-03-16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