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남북 분단 70년,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이 됐다. 동아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큰 정치적 사건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관통해 왔는지, 또 세대가 바뀌며 어떤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문화의 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하나는 서울과 평양의 극명한 체제 차이를 건축을 통해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한·중·일 3국의 포스트 모던한 1970년대 생 예술가를 내세워 요즘 세대에게 과거가 갖는 의미를 묻는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평양 김일성광장을 같은 뷰로 잡아 이란성 쌍생아처럼 보여주는 이 두 장의 사진 만큼 남과 북을 극명하게 대비하는 게 있을까. 건축물이야말로 자본주의에 편입된 남한과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북한이 체제 경쟁을 벌이며 구축해온 시간의 지층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한반도 오감도’는 ‘건축의 정치학’을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풀어냈다. 그런 이유로 120년 베니스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에 황금사자상을 안겼던 전시를 국내에서 구경할 수 있게 됐다. 수상 주역인 커미셔너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 큐레이터 배형민(서울시립대 교수), 안창모(경기대 교수) 트로이카가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 다시 한번 협업의 미를 발휘했다.
30명이 넘는 건축가, 시인, 문인, 화가, 사진작가, 영화감독, 수집가가 참여한 400여점 작품은 그 숫자도 많지만 사진, 영상, 건축모형, 포스터, 책, 그림 등으로 장르가 다양해 자칫 너저분해 보이기 십상이다. 그런 재료를 갖고도 통일감을 부여하는 유기적인 공간 구성, 관객이 이야기를 읽어내게 하는 전략적 배치를 통해 “건축이야말로 서울과 평양의 차이”라는 걸 웅변하고 있다. 노랑 빨강 파랑 주황 검정 등 ‘오방색’을 차용한 공간 구획은 칙칙한 회고전으로 흐를 수 있는 전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던지는 데 성공했다.
남한과 북한은 전후 재건 과정에서 정반대 길을 걸었다. 평양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백지상태에서 사회주의 도시를 건설했으며 서울은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흔적 위에 자본주의를 쌓아올렸다.
차이만 있는 건 아니다. 기념비적 도시를 지향했다는 점이 닮았다. 재건과정에서 두 체제 모두 아파트 도시를 건설했다. 남한의 63빌딩은 자본이, 평양 유경호텔은 정권이 만든 거라는 점에서 다르지만 과시적 기념탑이라는 데에서는 같다.
유례없는 단절의 역사를 이어오면서도 상호 건축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예컨대, 북한은 구소련의 영향을 받아 서양의 고전주의 양식 건축물을 지었지만 주체사상 이후 전통 양식을 도입했다. 이는 평양을 방문했던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자극을 줬고, 1972년 완공된 세종문화회관에 한옥 처마선을 차용한 것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이질성 속의 동질성은 화해 가능성에 대한 꿈을 꾸게 한다. 비무장지대(DMZ)는 물리적으로는 단절된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업, 비정부기구, 종교단체들이 끊임없이 오가며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정치적 대치, 미래 통일에 대한 염원을 이처럼 건축을 통해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삶의 재건’ ‘모뉴먼트’ ‘경계’ ‘유토피안 투어’ 등 4개 소주제로 구성돼 있다.
‘유토피안 투어’는 지상낙원을 표방하는 북한의 현재 모습을 외국인의 컬렉션을 통해 꾸몄다. 영국인 닉 보너(55)는 93년 베이징에 북한 관광 전문 고려여행사를 차리고 20년 넘게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온 사업가다. 누구보다 북한 땅을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그가 찍은 사진에는 한복 입고 나들이하는 여성들, 해맑게 웃으며 하교하는 남학생들 등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양의 속살이 담겨있다. 전시는 그래서 정치보다는 건축 혹은 문화가 남과 북을 더 융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실감케 한다.
남한 건축가 고(故) 김수근이 80년 10월 남북 건축가들이 모였던 도쿄 세계건축사연맹(UIA) 아시아총회에서 아리랑 합창을 제의한 후 즉석 지휘하는 한 장의 사진은 이번 전시의 숨은 보석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다른 듯 닮은 남북 건축물, 낯설지 않네… ‘한반도 오감도展’
입력 2015-03-16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