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트 美 대사 테러-경찰 수사결과 발표] “김기종, 북한 동조·반미 성향… 극단적 행위로 이어져”

입력 2015-03-14 02:46
김기종(55·구속)씨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조찬 행사 초청장을 받은 건 지난달 17일이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참석하는 자리였다. 김씨는 평소 거리 캠페인 등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 중단을 주장해 왔다. 미국 탓에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됐고 남북관계가 악화된다고 여겼다. 지난달 24일 주최 측에 전화로 참석 의사를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렇게 시작된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의 1차 수사를 매듭짓고 13일 김씨를 살인미수·외교사절폭행·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김씨의 북한 동조 및 반미 성향이 미국대사 공격이란 극단적 행위로 이어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씨는 “리퍼트 대사가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어서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김씨가 ‘조찬에 참석해 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대사를 보면 어떤 액션을 취하겠다’고 사전에 결심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지난 2일 예정대로 키 리졸브 연습이 시작되자 분노는 극에 달했고, 김씨는 국회도서관에서 ‘남북 대화 가로막는 전쟁 훈련 중단하라’는 유인물을 만들었다. 집에서는 1시간가량 리퍼트 대사 블로그 등을 뒤지고 ‘오바마 키(신장)’ ‘키 리졸브’ 등을 검색해 자료를 모았다.

경찰은 김씨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키를 검색한 건 리퍼트 대사의 체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키를 알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사진으로 대사의 키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4일에는 ‘형법’도 검색했다.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 5일 오전 서울 신촌 집을 나와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집에서 쓰던 길이 25㎝ 과도와 커터칼이 상의 오른쪽 주머니에 있었다. 오전 7시36분 세종홀에 입장해 6번 테이블에 잠시 앉았다가 금세 일어나 헤드테이블로 돌진했다.

공범 및 배후세력 존재 여부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아직 불분명하다. 김철준 수사본부장은 “김씨에게서 압수한 서적 등 43점을 감정해 지금까지 24점의 이적성을 확인했다”며 “이적표현물 소지죄 등의 적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김씨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7차례 방북한 것과 2011년 12월 김정일 분향소 설치 시도 행사, 이적단체인 범민련 남측본부 소속 단체가 주최한 친북성향 집회 등에 참석한 점을 주시하고 있다.

김씨는 조사 과정에서 한국 정부를 ‘남한 정부’라고 부르며 ‘남한에 김일성만한 지도자가 없다’ ‘우리는 예속된 반식민지 사회이고 북한은 자주적인 정권으로 생각한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줄곧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김씨가 초청장을 받은 뒤 3회 이상 연락한 33명 중 간첩죄로 처벌받은 김모씨, 이적단체인 연방통추 핵심구성원 김모씨 등 국보법 위반 전력자가 있다며 범행과의 연관성을 살펴보고 있다. 김씨 명의 금융계좌 6개 등도 분석 중이다.

리퍼트 대사는 지난 12일 피해자 조사에서 “사건 당시 김씨가 접근하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범행 순간 살해 위협을 느껴 출구를 얼른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