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형섭 (16) 태권도협회 300명 ‘에볼라를 차 버리자’ 행사

입력 2015-03-16 02:38
라이베리아 태권도협회 회원들이 ‘에볼라를 차 버리자’는 캠페인의 대형 현수막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라이베리아에 도착한 나는 에볼라의 심각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 9시부터 아침 6시까지 계엄령으로 거리 통행이 금지됐고 곳곳에 ‘에볼라 캠프’로 명명한 대형 천막이 설치됐다. 대부분 상점은 문을 닫았으며 경찰과 군인들이 에볼라 환자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길거리마다 경비를 섰다. 마치 전쟁터 같은 모습이었다.

에볼라가 무서운 건 환자의 타액이 피부에 닿으면 3일 만에 발병해 한 주 동안 눈 코 입 등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10일 안에 죽기 때문이다. 현지인들도 에볼라 공포 속에 살기는 마찬가지여서 함부로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체는 그대로 방치됐다. 선교센터에 도착해 보니 인근 지역 도로에 한 40대 여인이 숨져 있었다. 또 정커팜 지역을 방문할 때 지나는 팅커타운 도로에도 에볼라로 숨진 청년이 쓰러져 있었다. 평화로웠던 시골마을 꼬토타운도 에볼라가 집단 발병해 수십명이 한 번에 희생됐다. 많은 이들이 집을 떠났으며 마을에 남은 몇몇 사람들은 가족을 잃고 에볼라로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어느 마을을 가도 에볼라로 가족을 잃고 슬픔에 젖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다시 왔다는 소식을 들은 태권도협회 임원과 유단자들이 도착한 다음날 선교센터로 모였다. 이들은 “에볼라보다 더 시급하고 무서운 건 에볼라로 인한 불안과 공포심”이라며 “모든 사람이 위축돼 식량조차 구하러 다니지 못하니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일에 적극 나서자”고 제안했다. 에볼라 예방 및 퇴치 운동을 함께 펼치자고 건의하러 온 것이다. 당시 라이베리아 정부는 에볼라 전염을 염려해 모든 행사와 모임을 중단시켰지만 정부 요직에 근무하는 태권도협회 중진들이 나서 정부 허가를 받았다. 에볼라 발병 6개월 만에 최초로 정부의 허가를 얻어 치른 대형 행사였다.

태권도협회가 연 행사는 ‘에볼라를 차 버리자(Kicks Ebola out of Liberia)’는 캠페인이다. 제자 300여명은 도복 대신 에볼라 퇴치 구호가 적힌 옷과 모자를 입고 악대와 함께 수도 중심가를 행진했다. 또 시민들에게 태권도 시범을 보이며 에볼라를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를 북돋우었다.

하지만 두려움을 없앤다고 에볼라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의료 지원이 있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이겨낼 수 없다. 찰스 매클래인 라이베리아 농수산부 장관은 “라이베리아인의 에볼라 치사율은 90%이고 외국인은 40%인데 그 이유는 14년간의 내전으로 인한 영양 결핍과 기초 체력 약화 때문”이라며 내게 쌀 고기 등 식량 지원을 부탁했다.

에볼라의 폐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에볼라로 인한 두려움은 당장 생계를 위한 일자리마저 찾아 나서지 못하게 했다. 물가가 급등해 식량과 생필품 가격이 치솟아 가난한 이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다.

나는 밀알복지재단이 지원한 재난긴급구호기금으로 3개월에 걸쳐 에볼라로 큰 피해를 입은 27개 마을에 의약품, 이동식 손세척기, 쌀, 분유 등을 지원했다. 에볼라 발병으로 외국인들이 철수해 일자리를 잃고 식량과 생필품을 구할 수 없던 주민들은 구호물품과 식량을 받자 춤을 추며 감사를 표했다.

식량과 의약품을 배포하는 동안 기적적으로 에볼라가 진정 국면으로 돌아섰다. 에볼라는 라이베리아에 고아 2000여명을 남겼다. 아직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 있으니 그 사명을 끝까지 마무리하고 오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