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세계 발레의 ‘종가’ 파리오페라발레가 브리짓 르페브르의 뒤를 이을 차기 예술감독을 발표했다. 1995년부터 발레단을 이끌어온 그는 2014년 8월을 끝으로 예술감독에서 물러난다고 2012년 초 예고한 바 있다. 발레단 이사회는 새 감독 후보들을 찾은 끝에 2012년 말 파리오페라발레 수석무용수 출신으로 비엔나오페라발레 예술감독인 마뉴엘 레그리 등 9명에 대해 면접을 치렀다.
모두 쟁쟁한 인물이었지만 최종 선택 권한을 지닌 니콜라 조엘 이사장은 벵자멩 밀피예를 선택했다. 영화 ‘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여배우 나탈리 포트만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밀피예는 원래 뉴욕시티발레 수석무용수를 지내고 안무가로도 커리어를 쌓아온 인물이다. 그가 만든 LA댄스프로젝트는 2011년 창단 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무용단으로 성장했다. 한국 무용수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에서 활동한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15일 “이사회가 밀피예의 스타성 및 화제성과 무용단에서 보여준 기획력, 기금 확보 능력, 안무가로서의 가능성 등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와 같이 파리로 이사한 밀피예는 취임 1년 전부터 발레단으로 출근하며 업무를 익히는 한편 르페브르와 함께 다음 시즌 레퍼토리를 구상했다. 그가 지난해 9월 예술감독으로 정식 취임한 뒤 할리우드 스타들까지 전용기를 타고 공연을 보러오는 등 관객이 몰리고 있다. 유럽 경제위기로 정체 상태였던 후원금도 크게 늘었다.
파리오페라발레 뿐만 아니라 구미의 국공립 예술단체는 이변이 없는 한 후임 예술감독을 취임 2년∼1년 반 전에 발표하고 1년 전부터 업무를 익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새로 오는 예술감독이 사전에 속속들이 파악해 취임 직후 장기계획까지 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처럼 서양 공연예술 ‘이식’의 역사가 짧은 일본의 신국립극장도 4년 임기의 연극, 발레, 오페라 부문 예술감독이 연임되지 않을 경우 2년 전 차기 감독을 발표한 뒤 ‘예술참여’라는 직함으로 업무에 참여시키고 있다. 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은 “좋은 오페라를 제작하려면 대개 1∼2년 전에는 연출가나 성악가를 캐스팅해야 하는 만큼 차기 감독이 일찌감치 업무에 참여하는 게 당연하다”며 “우리나라가 국립예술단체 예술감독을 미리 뽑지 않는다면 발전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들 국가의 예술감독 선택기준도 해당분야 전문성이 최우선시 된다. 단순히 무대에서 빛났던 스타 예술가가 아니라 단체를 운영할 수 있는 기획력과 행정력 등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한 오페라 평론가 이용숙씨는 “독일은 주정부 단위로 운영돼 주요 오페라극장은 모두 주립극장인데도 극장 이사회에서 오페라와 발레 예술감독을 임명한다”며 “주정부가 주립극장을 재정적으로 지원해도 오페라나 발레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국공립단체 예술감독 임명 과정은 자주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사퇴한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이 대표적이다. 그는 올 초 임명 당시부터 ‘낙하산 인사’라는 의혹에 휩싸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닌 청와대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도 난무했다. 지난달 24일 전격 사퇴를 표명한 한 전 감독은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가 지난 11일 우편으로 정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손진책 국립극단 전 예술감독은 “국립예술단체 대표 또는 예술감독이 선정되는 과정에서 정치인과의 친소관계가 거론되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며 “예술 분야만이라도 해당 단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전문가를 뽑아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장수동 감독은 “유명무실한 국립예술단체 이사회를 전문가들로 구성해 실질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사회에서 예술감독 후보를 2∼3명 뽑아서 문체부에 추천하면 그 가운데서 임명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후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선정과 관련해 아직 어떤 기준도 마련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외국 국공립 예술감독 선임 사례… 외국선 후임 1∼2년 전 뽑아 업무 미리 익히게 돕는다
입력 2015-03-16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