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 공모 당선작-대상] 빈 의자

입력 2015-03-16 02:48

가을이 노랗게 떨어진

늙은 은행나무 아래는

휑하니 비어있는 의자 하나

낮은 몸 잔뜩 구푸린 채

낯선 이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기다린 것일까

녹슨 다리에 굽은 허리

색 바래 검버섯 피어있고

한쪽 귀퉁이는 이미 썩어

흉하게 내려앉아버렸다



오랜 세월 동안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처럼

오지도 않는 이를 기다리다

홀로 늙어버린 빈 의자



방황하는 젊은이라도

삶에 지친 가장이라도

짝 잃어 외로운 노인이라도

누구든지 받아주고 싶은 데

언제든지 받아줄 수 있는 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더 늙어 보이는 빈 의자엔

가을햇살만 노랗게 내려와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다

기다란 그림자만 앉아있다

이재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