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도 생명이 있다. 사회 다변화와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현상과 도구가 나타나고 발명되면서 과거에 없던 단어들이 탄생한다. 반면 옛날에는 자주 쓰였으나 현재에는 거의 쓰이지 않아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어휘도 숱하다. 한국인은 우리에겐 없는 단어나 용어의 경우 우리말화 하려는 노력보다 외국 것을 그대로 차용해 쓰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빌리더라도 본래 뜻에 맞게 쓰면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다. 운동경기나 행사 때, 사진 찍을 때조차 ‘파이팅(fighting)’을 외치는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파이팅은 ‘싸우는’ ‘호전적인’ ‘전투에 적합한’ 등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다. 영어권 사람들이 들으면 “나와 싸우자”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영어 형용사가 우리나라에서 ‘힘내자’ ‘이기자’는 의미의 감탄사가 됐다.
파이팅은 콩글리시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면 이 콩글리시가 인터넷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버젓이 표준어로 등재됐을까. 국립국어원은 우리말 다듬기(www.malteo.net) 사이트 등의 공모를 통해 외국어나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일부터 13일까지는 인포그래픽, 시그니처 아이템, 블라인드 테스트, 큐레이션 서비스, 토크 콘서트, 스핀 오프 6개 용어에 대한 공모가 진행됐다.
수년 전 파이팅도 대상이 됐는데 이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단어가 ‘아자’였다. ‘아자’가 표준어로 등재된 사전도 있지만 정작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찾을 수 없다. 더욱이 정착되지도 못했다. 고유 언어를 갖고 있는 나라들은 자기만의 응원구호가 있다. 기름을 치자는 뜻의 중국의 ‘자유(加油)’, 힘내라는 일본의 ‘간바레(頑張れ)’, 영어권 국가의 ‘go’, 스페인어권 국가의 ‘viva’가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를 갖고 있는 우리가 응원구호로 외국어를, 그것도 엉뚱한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2002년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은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같은 친숙한 우리만의 응원구호가 어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한마당-이흥우] 국적불명 응원구호 ‘파이팅’
입력 2015-03-14 0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