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애인이 밉다며 자동차로 들이받고, 재산 문제로 불화를 겪다 엽총을 발사하는가 하면 연인과 다투고 홧김에 불을 질렀다. 자신의 차에 경적을 울렸다고 그 차 앞에 끼어들어 10여 차례 급정차로 위협했다. 주차를 잘못했다고 따지는 행인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분노 범죄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평등과 양극화로 치닫는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 역시 겹겹이 쌓이고 있다. ‘땅콩 회항’으로 대변되는 ‘갑질’ 논란부터 연말정산 세금 폭탄 현실화, 전셋값 폭등, 청년실업 증가, 영세 사업장이 몰락해 임금을 받지 못한 경우가 사상 최고에 이르는 등 약자들은 발 디딜 곳 없는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분노의 치유자로 서야 할 교회마저 분노의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목회자의 전횡과 상식 밖의 설교, 신자 사이의 갈등으로 이 사회 도덕성의 최후 보루마저 손상되고 있다. 분노하는 대한민국,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통제불능 상태에 놓인 분노
전문가들은 최근 발생한 분노 범죄가 과거보다 황당하고 잔인하며 피해 규모가 크다는 것에 주목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분노가 유발하는 사건들의 빈번한 발생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불안하다는 것을 증거하고, 사회통합이 약화돼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며 “우리 사회에서 분노 조절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리학에서 분노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 혹은 양쪽 모두에게 부당한 일이 가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일어나는 강한 부정적 감정을 말한다. 분노는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정서의 하나로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다.
문제는 한국사회의 분노는 부정적 감정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제력을 잃은 분노가 폭발하며 ‘욱하는’ 범죄나 폭력 사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분노의 대상이 어린이나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분노 조절은 이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역할과 그리스도의 분노 처리 방식은 통제할 길 없는 이 사회에 하나의 선례(善例)를 제공할 수 있다.
분노하라, 그러나 죄는 짓지 마라
분노는 성경에서 비교적 세밀히 다뤄진다. 한 보고에 따르면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분노와 인간의 분노만 600여건 언급된다고 한다. 분노를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히브리어 명사는 ‘아프’란 단어다. ‘코’ 또는 ‘콧구멍’을 의미하며, 콧숨을 내뿜거나 코를 벌름거린다는 표현으로 노(怒)를 나타내는 데 사용한다. 잠언에 나오는 ‘노하기를 더디 하다’(14:29)는 구절은 문자적으로 ‘코를 길게 하다’라는 뜻이다.
호흡과 관련해 미국의 엘머 게이즈 박사가 했다는 실험 이야기는 자주 회자된다. 게이즈 박사는 마구 화를 내는 사람의 날숨을 채취해 냉각시켜 갈색 침전물을 추출했다. 이를 증류수에 타서 쥐에게 주사했더니 불과 몇 분 만에 쥐의 심장이 멎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1시간 동안 화내는 사람들의 숨독을 채취했더니 80명을 사망케 할 독이 검출됐다고 한다.
미국의 치유상담가인 탈봇신학교 노먼 라이트 박사는 “입에서 직장까지 9m 길이의 튜브형 위장 조직은 억압된 분노에 여러 반응을 나타낸다”며 “궤양성 대장염은 거의 대부분 분노 때문에 생기며 천식과 같은 호흡장애도 분노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성경은 분노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분노는 허용하되 죄가 스며드는 것은 반대한다. ‘화가 나면 조심하라. 죄 짓기 직전이다’는 얘기다. 성경(새번역)은 이를 분명히 한다. “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악으로 기울어질 뿐이다”(시 37:8),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잠 16:32),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6∼27).
죄악에 대해 분노하라
사막 교부들의 공통된 능력은 분노를 다스릴 줄 아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분노가 허용되는 조건은 단 하나, 죄에 대한 것이었다. 백석대 김진하 교수는 “사막 교부들은 분노가 가져올 악한 결과를 생각하고 어떤 경우에도 화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며 “화나게 만드는 사람이나 상황으로부터 즉각 벗어났으며 분노를 이길 힘을 위해 성령께 의지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분노와 인간의 분노를 비교하는 것은 분노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팀 라헤이와 밥 필립스는 공저 ‘아름다운 분노’에서 이를 대조했다. 하나님의 분노는 뚜렷한 목적이 있으며 비이기적이다. 그의 분노엔 증오나 악의, 원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분노는 불의를 향해 있다. 반면 인간의 분노는 통제되지 않고 참을성이 없다. 증오와 악의, 원한에 사로잡혀 있으며 다분히 이기적이다. 인간의 분노는 대상을 파괴하며 관계를 깨뜨리고 상처를 준다(표 참조).
백봉교회 이재홍(46) 목사는 “분노 자체는 죄가 아니다. 분노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라며 “예수님도 더럽혀진 성전의 모습에 분노하고 정화하셨다”고 말했다. 이 목사에 따르면 분노 성향이 강한 사람의 사고 속에는 ‘자동인지’ 사고체계가 작동한다. 이 사고체계의 특징은 ‘절대’ ‘반드시’라는 당위적 전제가 항상 따라붙는다. 이 목사는 “당위적 사고를 합리적인 사고로 전환해야 하는 게 관건”이라며 “‘반드시’ ‘절대’와 같은 생각을 ‘그럴 수도 있다’로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권수영 연세대 목회상담학 교수는 “최근 권력층에 대한 분노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한 분노는 소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한(恨)의 감정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거세게 나타나는 것”이라며 “교회는 분노하는 약자들의 상처받은 내면을 품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규헌 장로회신학대 목회상담학 교수는 사회적 악에 대한 분노 표시에 대해 “의분 표출은 필요하다. 공동의 의견을 글로 작성해 선언하는 방식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이 역시 하나님의 덕을 세우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뉴스&이슈-‘분노’] ‘욱하는 사회’ 크리스천의 덕목은… 더디게 노여워하라
입력 2015-03-14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