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고집의 차이는 미묘하다. 전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본질에 초점을 맞추며 상황에 따라 궤도를 수정할 줄도 아는 믿음의 모험이라면, 후자는 자기 철학의 기저에서 다져진 선입견을 신봉하며 주변을 곤란하게 만드는 믿음의 배신이다. 특히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과 자주 마주하는 선교지에선 더욱 그렇다.
간혹 자신의 현장 경험을 무기로 선교를 단정적으로 정의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고집이 교만을 만들어 내고, 때문에 여러 모습으로 표현하려 했던 선한 것들이 종종 오해를 받게 되기도 한다. 광야는 복음에 감화된 은혜가 날마다 새로워지는 곳이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날마다 새로운 은혜가 있는 곳이 광야다. 날마다 동일한 사람을 만나도 날마다 벅찬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는 곳이 광야다. 하나님 앞에 복음에 대한 신념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고대 페니키아 시절부터 역사의 길을 걸어온 포르투갈 리스본의 밤거리. 이곳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려하고, 고혹적인 건물 불빛들의 자태 이면에 분노와 좌절로 얼룩진 뒷골목의 신음이 들린다. 마약을 하는 곳이면 으레 매춘이 있고, 매춘이 있는 곳이면 또한 폭력이 뒤따른다. 2012년 2월, 바로 이곳을 기도로 품으며 고단한 삶에 지쳐 무력해진 영혼들을 돌보는 한 사람을 만났다.
“이보시오, 목사 양반. 나 여기 있소!”
거리에 들어서서 복음을 전하려는 찰나 별안간 눈이 풀린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걸어오더니 그를 부른다. 한눈에 봐도 술이나 마약 둘 중 하나에 푹 절어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모습이 연출되었다. 사고 꽤나 치게 생긴 그가 목사 앞에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목사는 매일 다른 성경말씀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설교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서서 경청하고 있었다.
벌써 8년째란다. 폐허가 된 공사장에서 밤이슬을 피하는 노숙자부터 몸을 파는 술집 아가씨들과 폭력배들까지,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셨다. 세상의 냉담하고 선입견으로 가득한 시선을 받는 뒷골목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그 목사를 친구로 삼았다. 그리고 복음을 듣기 시작했다.
그는 포르투갈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선교 사역 중인 강병호 목사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빵과 우유를 들고 뒷골목에 가서 한 사람 두 사람 붙잡고 거리에 서서 복음을 전하는 것뿐이다. 건물이 있는 교회도, 사역이 왕성한 프로그램도 그에겐 상관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진리만 붙들면 될 일이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광야 같은 리스본의 밤거리가 예배이자 사역 무대였다. 정말 지독한 신념으로 매일 다른 말씀으로 복음을 전했다. 저녁때마다 샌드위치를 만드느라 수고하는 아내의 동역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선교에는 열매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열매지상주의 시대’에 강 목사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옆에서 보니 알겠다. 열매 맺는 일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선교사는,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시고, 기뻐하신다면 우리는 열매에 대한 조급증과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나는 강 목사를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더럽고 무서워 피하는 유흥가 뒷골목에 거리낌 없이 들어갔더니 이제는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반기는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고 있다. 한때의 영광에서 이젠 낡고 쇠락해져 가는 포르투갈에서 한 사역자의 변함없는 열정을 통해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참 귀한 일이다. 이제는 유럽인들조차 귀를 막는 그 복음을 말이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46) 뒷골목의 복음주의자 - 포르투갈 리스본
입력 2015-03-14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