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1%대 시대] 버티던 한은, 금리인하 왜?… 가계부채 걱정보다 경기부양이 더 급했다

입력 2015-03-13 02:02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인하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한국은행의 12일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시장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주요 시장 참가자들은 한은이 일러야 다음달에나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예상보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급증과 급격한 외자 유출 가능성 등 여태껏 한은이 고수했던 기준금리 인하의 부작용 우려보다는 돈을 풀어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에 동조한 것이다.

◇깜빡이 안 켜고 차로 변경=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여러 지표를 보더라도 현 금리 수준은 실물경기의 회복세를 제약하는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1월에는 “기준금리 2.0%는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이를 당분간 추가 금리 인하가 없을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한은이 시장과의 소통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깜빡이를 켜지도 않고 차로를 변경했다는 불만이다.

그동안 한은은 초저금리로 인한 가계부채 급증이 불러올 부작용과 급격한 외자 유출 위험성을 들어 금리 인하를 주저했다. 가계부채가 늘면 향후 금리 인상기에 접어든 뒤 한계 계층을 중심으로 늘어난 원리금 상환 부담을 견디기 어렵다. 결국 가계소비 위축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최근 미국에서 조기 금리 인상설이 불거진 것도 한은으로선 고민이었다. 미국이 금리를 올려 우리나라와 금리 격차가 커질 경우 외국 자본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금리가 오르면 우리나라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초저금리만 믿고 빚을 늘린 한계 계층을 중심으로 연쇄 가계 파산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뒤바뀐 입장=이날 한은은 미국 금리 인상이 곧바로 국내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제로금리 상태인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다 해도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내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는 “하반기에는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갖고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부담 증대 우려에 대해서 이 총재는 “가계부채는 금리 인하에 기인했다기보다 우리 경제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로 인식한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관계기관끼리 노력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기준금리가 내려감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로 가계대출에 불이 붙은 가운데 추가 금리 인하는 기름을 부은 격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는 1089조원으로 1년 사이 68조원 늘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은행권 전체 가계대출이 20조4000억원 늘었는데 증가분의 대부분(88.7%)을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했다. 올해 들어서는 가계부채가 폭주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 당국은 최근 가계부채가 전반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이지만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날 금리 인하 직후 관계부처 합동으로 ‘가계부채 관리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한 것도 이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예상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한은은 이런 입장 변화에 대해 경제 상황이 당초 예측보다 더 악화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이 총재는 “성장세가 당초 전망에 미치지 못하고 물가 상승률도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전에 기준금리가 실물경제를 제약하는 수준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며 “이번 인하는 실물경기 회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통화정책 방향에선 “내수가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내수 회복이 미약하다”고 했던 표현에서 더 후퇴한 것이다. 물가에 대해서도 “당초 전망보다 낮은 수준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해 “하반기 이후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한 지난달보다 비관적인 전망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발표되는 수정 경제전망에서 한은이 전망치를 대폭 낮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선 이번 금리 인하가 경기 부양에 목을 매는 정부의 압박에 한은이 굴복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줄기차게 독립성을 보장해 달라고 주장하던 한은이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한 처사라는 비판도 나온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