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여검사’ 무죄 확정… 김영란法 적용 땐 ‘유죄’

입력 2015-03-13 02:28

대법원이 12일 ‘벤츠 여검사’ 사건 당사자인 이모(40) 전 검사의 알선수재 혐의에 무죄를 확정했다. 이씨가 내연관계인 변호사에게 받은 벤츠 승용차와 명품 가방 등은 ‘사랑의 정표’이며 사건청탁 대가로 볼 수 없다는 항소심 논리를 그대로 인용했다.

그러나 앞으로 제2의 ‘벤츠 공직자’가 나온다면 법망을 피해가기 어려울 수 있다. 벤츠 여검사의 항소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만들어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벤츠·명품 백은 ‘사랑의 정표’…대가성 없다=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이씨가 최모 변호사에게서 받은 금품을 ‘내연관계에 기초한 경제적 지원’의 하나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금품 성격을 두고 유무죄가 엇갈렸던 1·2심 판결 중 후자를 받아들였다.

판단 근거는 금품이 오간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씨는 부장판사 출신인 최 변호사와 2007년부터 내연관계를 맺었다. 이때부터 최 변호사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아왔다고 한다. 2009년 4월 문제의 벤츠 승용차를 받았고, 이듬해 4월부터 최 변호사가 속한 법무법인 명의의 신용카드를 받아 사용했다.

반면 이씨가 최 변호사로부터 특정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에게 재촉 전화를 넣어달라는 청탁을 받은 시점은 2010년 9월이다.

대법원은 “이씨가 청탁 이전에도 경제적 지원을 받았고, 청탁 이후의 경제적 지원 정도가 이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이씨가 수수한 금품은 청탁 대가가 아니라 사랑의 정표라는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만약 청탁 대가로 금품을 제공한 것이라면 최 변호사가 청탁 시점인 2010년 9월 벤츠 승용차와 신용카드를 돌려 달라고 요구할 이유가 없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설명도 받아들였다. 이씨가 실제 담당 검사에게 재촉 전화를 걸었던 것은 최 변호사를 위해 호의로 한 일로 봤다.

대법원 판결은 이씨의 금품수수 행위를 유죄로 봤던 1심 재판부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부산지법 형사5부는 “청탁 시점 이전에 받은 금품도 알선행위에 대한 대가”라며 이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었다. 특히 법률 전문가인 이씨는 청탁을 받은 시점 이후부터 벤츠 승용차와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내연관계에 따른 경제적 지원을 넘어 청탁 대가의 성질을 갖게 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김영란법 있었다면 달랐을까=이씨가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공직자의 금품수수에 대가성이 있어야 처벌하는 알선수재죄 구성요건 때문이다. 법조계는 김영란법이 존재했다면 이씨가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이씨는 벤츠 승용차와 신용카드 외에도 다이아몬드 반지(3000만원), ‘까르띠에’ 시계(2650만원), 모피코트(1200만원), ‘샤넬’ 핸드백(379만원), 골프채(600만원)를 받았다. 아파트 2채를 임대받았고, 한 달에 100만∼300만원씩 현금도 얻어 썼다. 1회에 100만원, 1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공직자 금품수수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하는 김영란법 조항을 명백하게 어기는 것이다.

게다가 김영란법은 기준 금액을 초과하는 금품수수의 경우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씨 입장에서 항변할 여지는 있다. 내연관계에 따른 경제적 지원이 김영란법에 명시된 8가지 예외사항 중 하나인 ‘사교의 목적으로 제공받은 선물’ 또는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공직자에게 아무 조건 없이 호의로 돈봉투를 건네는 사람은 없다”고 밝힌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입법 취지를 감안하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항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11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가 있다면 순수한 불우이웃을 위한 자선·기부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로고스 최진녕 변호사는 “결국 공직자에게 금품을 건넬 때는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어떤 일을 대비한다’는 속셈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김영란법의 골자여서 비슷한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 법에 의해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