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Made in Korea

입력 2015-03-13 02:10

1980년대 초 군복무 중일 때 상급부대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국산품을 애용합시다. OO중대 일병 OOO입니다”라고 관등성명을 대야 했다. ‘Made in Korea’ 국산품이 수입품에 얼마나 고전했으면 군인들에게까지 그런 걸 시켰을까 싶다. 당시 수출 입국 정책에 힘입어 수출액이 200억 달러가 넘었음에도 국산품에 대한 세계시장의 평가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제품에 비하면 족탈불급이었다.

그렇다 보니 국내에선 선진국에서 생산된 전기·전자 제품 밀수가 성행했다. TV, 손목시계, 카메라, 카세트 녹음기, 밥솥, 다리미…. 그즈음 관공서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입이 무거운 고위 공직자를 ‘미제 지퍼’라 부르곤 했다. 공직사회 내부 기밀을 한마디도 흘려주지 않으니 최악의 취재원이라는 기자들의 비아냥이었다. 그땐 지퍼조차 미제가 특별히 좋았던 모양이다.

북한이 수출 경공업 제품의 원산지를 ‘Made in Korea’로 표기할 것을 일선에 지시했단다. 지금까지는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로 표기해 왔다.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이 “제품에 DPRK라고 쓰면 다른 나라에서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는데 사실이라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대놓고 국가 브랜드 도용에 나선 북한 당국이 한심하면서도 측은지심이 든다.

현재 북한의 연간 수출 규모는 약 33억 달러로, 남한(5726억 달러)의 0.58%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29억 달러는 대 중국 수출이며, 석탄을 비롯한 광물성 연료가 가장 많아 44%를 차지한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북한 제품에 한국 상표를 붙여 내놓았을 때 해외 소비자들이 속아 넘어갈지 의문이다. 오히려 ‘무역 불량국가’로 낙인찍혀 국제적 고립이 더 심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

김정은의 왕조국가 DPRK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지,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포기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