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달자] “괜찮아”

입력 2015-03-13 02:10

“괜찮아”란 말이 요즘 유행이다. 지난 5일 백담사에서 동안거를 끝낸 무산설악 스님은 “괜찮아”를 강조했다. 올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그레이엄 무어도 수상소감으로 이 말을 했다. “이상해도 괜찮아, 남과 달라도 괜찮아”는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는 사느라 각박해져 남의 이상한 점에 대해 화를 내거나 물리친다. 나와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생각해보니 나 자신에게도 너무 과민하게 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내 길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길에 대해 언급하며 불편한 마음을 사는 것이다. 해서 나는 요즘 자기 전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간단한 기도를 끝내고 말한다. “괜찮아, 달자. 그래, 괜찮아.”

새벽에 눈을 뜨고도 기도 다음에 이 예식을 치른다. 마음이 편하고 편해진다. 나를 용서하고 편안한 언덕으로 데리고 가는 일은 나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용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문제는 늘 ‘괜찮지 않은 것에 대해’였다. 속이 좁아터져서 도저히 남을 용서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문제에서도 ‘그만!’이라는 명령어를 내리지 못하는 것도 만족할 수 없는 너무 과한 욕심에서 비롯된 결과일 터이다.

요즘 떠들썩했던 사건의 주인공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말에도 이 보석 같은 말이 나왔다. 그는 얼굴에 피가 흘러내리는 상황에서도 “I am ok”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한 것이다. 이런 긴박한 순간에 나오는 말은 바로 그 인간의 내성에 자리 잡은 인격일 것이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다.

우리는 앞으로 많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을 ‘다름’으로 바라보지도 말고 이상하게도 바라보지 말고 ‘그래그래 괜찮아’라는 인간적 이해로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는 일이 핵보다 전쟁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은 지당하다. 이 시대가 그러하다. 무기보다 먼저 우리들 마음속에 이해와 사랑이 자랄 때 모든 인간사는 아름다움으로 걸어가게 될 것이다. 이해와 사랑은 과격한 자아를 쓰다듬어 주는 항생제이므로.

신달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