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재중] ‘감시견’까지 잡을 셈인가

입력 2015-03-13 02:20

올해 설 명절에 본의 아니게 아내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작은 선물이 들어왔는데 아내가 나한테 말하기도 전에 풀어헤친 것이다. 아내는 명절 선물이니 으레 받아도 되겠거니 하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선물은 내가 받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아내가 미리 풀지 않았더라면 나는 당장 그 선물을 돌려보냈을 것이다.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장안의 화제다. 법 적용 대상이 공무원뿐 아니라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과 그 배우자까지 3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우선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법 제정을 환영한다. 부패는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사회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4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5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에 머물렀다.

공직사회도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만 없으면 골프 접대나 고가의 선물을 받아도 처벌받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패가망신할 수 있다. 공직자들은 스스로 몸가짐을 엄격히 해야 할 것이다.

나 자신도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운 점이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언론이 스스로 청렴함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해 법으로 강제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이 크다는 방증이고 그에 따른 책임이 요구되는 것일 게다.

문득 노무현 대통령 시절 기자실 ‘대못질’ 사건이 생각났다. 기자실을 없애고 개방형 브리핑룸으로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언론이 대립했다. 기자실 문화의 폐쇄성에 대한 지적은 옳았다. 하지만 방법이 적절치 못했다. 기자실에 변화가 필요했다면 이를 공론화해 언론이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게 했어야 했다.

김영란법도 법 취지는 좋지만 졸속으로 처리돼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무엇보다 위헌 소지와 과잉 입법 우려가 제기되는데도 국회의원들이 ‘김영란법 반대=반개혁’이라는 여론에 밀려 법을 그냥 통과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도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위헌 여부를 꼼꼼히 살폈어야 했다.

법이 악용될 소지도 크다. 청와대와 정부가 맘에 들지 않는 언론인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해 김영란법을 동원할 수 있고, 특정 진영의 시민단체와 관변단체들이 고소·고발을 남발할 수도 있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의 비대화도 우려된다. 특히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그동안 살아 있는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국민이 위임한 검찰권을 책임 있게 행사했는지 의문이다.

원래 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행 전이라도 보완해야 한다. 법을 처음 제안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핵심 조항이 빠졌다고 지적했듯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은 다시 살려야 한다. 공직자가 자신 또는 가족, 친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맡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서울시가 올해 처음으로 3급 이상 고위 공무원 본인은 물론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보유 재산과 직무 연관성을 심사해 문제가 있으면 인사조치하겠다고 하니 참고할 만하다.

헌법상의 언론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 부패문화를 일소하겠다면서 부정·비리를 고발하는 언론을 속박해 ‘감시견(watchdog)’을 때려잡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