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엄마 인문학’이 몰려온다… 공부하는 존재, 인문학의 새로운 고객 자리매김

입력 2015-03-13 02:52 수정 2015-03-13 18:49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숭실대에서 열린 '엄마 인문학: 책 읽는 엄마가 세상을 바꾼다' 연속 강좌에 참석한 엄마들의 모습. 작은 사진은 이 강좌의 강사이자 최근 '엄마 인문학'이란 책을 출간한 인문학자 김경집씨. 꿈결 제공
인문학자 김경집(56)씨는 인문학 열풍이라는 요즘 잘 나가는 저술가이자 강사다. ‘책탐’ ‘인문학은 밥이다’를 비롯해 10여권의 책을 썼고, 청소년이나 성인 대상 강연에 자주 불려나간다. 그가 근래 새로 주목하는 대상은 엄마들이다. “엄마가 먼저 변해야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다” “엄마가 달라져야 세상이 바뀐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엄마들은 그동안 서재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었고, ‘읽는 존재’ ‘공부하는 존재’로 조명된 적도 없었다. 엄마들에게 인문학이란 지식이나 교양을 드러내는 액세서리 정도로 취급돼온 것도 사실이다. 김씨는 새 책 ‘엄마 인문학’(꿈결)에서 엄마들을 공부하는 존재로, 인문학의 새로운 고객으로, 그리고 사회 변화의 주체로 호출한다. 이 책은 ‘엄마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등장을 알리는 첫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답할 것인지 주목된다.

책은 지난해 엄마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섯 차례의 연속 강연회 내용을 수록했다. ‘왜 지금 우리는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역사, 예술, 철학, 정치와 경제, 문학 등을 훑어 내리면서 엄마들이 인문학을 만났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김씨는 11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동안 엄마들을 규정해온 건 남편의 직장과 소득이고 아이의 진학이다. 그러다 보니 양쪽을 쥐어짠다. 서로가 다 불편하고 불행해지는 일이다”라며 “그래서 엄마들에게 인문학을 공부하자고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인문학을 통해 자기 삶을 회복하면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러면 남편한테도 유연해지고, 아이도 닦달하지 않게 된다. 가정 자체가 행복해질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큰 혁명이라고 본다. 그런 엄마들이 만나고 연대하면 사회 변화도 가능해진다.”

김씨가 새 책을 통해 공식적으로 호명하기 이전부터 ‘엄마 인문학’이란 말은 출판계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형성돼 왔다. 출판사 반비의 김희진 대표는 “엄마들이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이 굉장히 분출하고 있어 많이 놀라고 있다”면서 “올해 여러 출판사에서 ‘엄마 인문학’을 주제로 책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도서관이나 지자체, 교육청 등에서도 엄마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독서클럽이나 글쓰기모임, 학습모임에도 주부들이 몰려들고 있다. ‘공부하는 주부들’을 뜻하는 ‘공주파’란 말도 생겼다.

독서공동체 숭례문학당을 이끌고 있는 김민영 이사는 “공부하고 글 쓰는 주부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에 의한 저술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독서클럽이나 공부모임마다 문집 형태의 출판물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면서 “앞으로 공부하는 엄마들이 쓴 책들이 많이 출판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학습모임에서 공부하는 주부들 세 명이 공저한 ‘공부하는 엄마들’(유유)이란 책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

김씨는 ‘엄마 인문학’이 우리 사회에 여성주의적 시각을 확대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지금 인문학이나 고전강독은 철저히 남성적 시각이 지배하고 있다. 남성들이 쓰고 해석하고, 여성들에게 가르치는 식이다. 엄마 인문학은 인문학에 여성적 시각을 유입시키고 강화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